[사설] IMF 소장이 던진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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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의 경제 운용이 실물경제의 움직임에 허급지급 따라가는 대증 (對症) 요법에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들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경기 회복세와 주가 급등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 정부차원에서의 일관된 진단이나 적절한 정책대응 없이 정책당국간에 시각이 엇갈리거나 책임있는 당국자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례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금리와 주가.환율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은 새로운 시장압력으로 인식돼 시장질서 왜곡 등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다분하다.

정부가 내심 어떤 정책목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당국부터 자만하지 말고, 특히 부처간 조율 없는 뒷북치기식 단기처방 남발은 극력 자제해야 한다.

최근 급속한 경기 회복과 증시 활황을 맞아 정책당국자들 간에도 낙관론이 번지고, 신중론 또는 경계론은 삼가거나 꺼리는 풍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민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내년 선거 등 다가오는 정치일정을 감안한다면 그런 유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거품 조짐에 미리 대응하지 못하면 머지않아 옴쭉달싹할 수 없는 정책의 블랙홀에 빠지고 만다는 점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국제통화기금 (IMF) 존 도즈워스 한국소장의 최근 경고는 시의적절하고 자못 충격적이다.

그는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계속 지속되기는 어려우며 내년중 다시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가 서울주재 각국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비공개로 이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 의미를 더한다.

한국의 회복세는 저금리와 재정적자로 인한 유동성장세에 크게 힘입었으며 이는 일본처럼 시간만 다소 벌어줄 뿐 구조조정을 통한 근본적 문제해결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은 열번이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

산업생산 증가는 재고소진 때문이며, 소비 증가는 주가 급등으로 자산가치가 불어난 일부 계층에 국한되고 있고, 이런 금융 활황에 안주 (安住) 해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문제점은 우리도 기회있을 때마다 제기해 왔다.

그러나 외국의 투자가들과 국제기관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섬뜩하다.

경제의 '기초체력' 만 믿고 외국의 경고를 외면만 하다 졸지에 환란을 자초한 것이 엊그제 아닌가.

최근 치고 빠지기로 시세차익을 올려 막대한 투자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는 외국인들의 투자행태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금시장의 개선이 투자 확대로 연결되지 않고, 금융장세를 실물 회복이 받쳐주지 않으면 주가는 언젠가 폭락하고야 만다.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냄비식' 단기대응보다 시중유동성이 투자로 연결되도록 제도적 고리를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과열이 아니다' 며 정부당국자가 나서서 열기를 부추기는 것처럼 경솔하고 위험천만한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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