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스테이션 폴 바셋’의 바리스타 김재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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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지하 1층 ‘커피 스테이션 폴 바셋’. 2003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호주 바리스타 폴 바셋의 이름을 딴 매장이다. 매일유업이 커피사업에 뛰어들면서 처음으로 연 곳인데, 폴 바셋이 엄선한 원두를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하고 그가 추구하는 커피 맛을 선보인다.

이 매장의 총괄 매니저 김재범(30·사진)씨. 그는 일본 폴 바셋 카페에서 온 일본인 바리스타들과 함께 에스프레소를 뽑고 각종 커피 음료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그는 2008년과 올해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두 해 연속 커피의 맛을 판별하는 월드 컵테이스팅 챔피언십(WCC)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수상하기도 했다.

“원래 커피를 잘 안마셨어요. 그런데 ‘밥보다 비싼 커피를 왜 많이 마실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인덕대 인터넷방송학과를 다니던 그는 2004년 서울 종로 길을 걷다 한 커피전문점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보고 커피와 인연을 맺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쓰다는 생각뿐이던 그가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며 한 일은 매장 청소와 홀 서빙. 10개월 동안 어깨 너머로 바리스타가 커피 음료를 만드는 모습을 봤다. 성실성을 인정한 점주가 바리스타로 일해볼 것을 권했다. 취업 시즌을 앞둔 2005년 1월 그는 바리스타의 길을 택했다.

10개월 동안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지만 다시 3개월 동안 청소와 설거지, 홀 관리를 해야 했다. 김씨는 “바리스타가 되려면 매장 돌아가는 것부터 익혀야 한다”며 “바로 커피를 뽑으면 겉멋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역시 초기에는 커피의 맛보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를 신경썼다. 하지만 세계대회에 나가보고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커피라는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가 바리스타가 반드시 갖춰야 할 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씨가 바리스타로서의 자질을 쌓은 과정은 독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선배들이 기본 기술을 가르쳐주고 얼마든지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커피를 만드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소개했다. 바리스타로서의 입지를 갖추려면 최소 2년에서 4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 500잔 정도의 커피를 만든다. 지금까지 100만 잔 정도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바리스타가 되려면 커피에 대한 관심과 열정, 기술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 서비스 정신도 중요하다. 그는 “바리스타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면 인사성이 바른지를 점검한다”고 말했다. 지원자의 태도를 보면 그가 커피를 다루는 장인이 되려고 하는지, 멋있어 보이는 직업을 원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바리스타의 연봉이 높지 않다. 에스프레소 음료에 우유로 무늬를 내는 ‘라떼아트’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바리스타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탓이다. 정형화된 커피 음료를 대량 판매하는 전문점이 많고 커피 맛의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층이 두텁지 않아 전문가를 고용해야 한다는 인식도 약하다. 와인 분야에서 소믈리에가 전문가로 대접받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커피가 대중화할수록 바리스타가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김씨가 근무하는 매장의 원두는 폴 바셋이 직접 고른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특정한 맛을 내기 위해 개조한 것이다.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나 커피잔, 받침 하나 아무거나 쓸 수 없다. 김씨는 요즘 한국을 찾은 폴 바셋으로부터 생두를 볶아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에스프레소 맛을 내는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언젠가는 제 이름을 내건 커피의 맛을 선보일 겁니다.” 그는 커피의 맛으로 국내 커피시장을 장악한 대형 브랜드를 누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김성탁 기자


바리스타=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바텐더와 달리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만을 의미한다. 좋은 원두를 선택한 다음 다양한 커피 머신을 활용해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커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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