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파업대처 노사정책 새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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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지하철 파업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침은 '타협 불가 (不可)' 와 '불법 필벌 (必罰)' 이란 두 단어로 압축된다.

정부의 새로운 노동.시위대처 정책이 파업 철회과정에서 크게 '약효' 를 보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석무탄' (有石無彈.화염병과 돌멩이는 있었지만 최루탄은 없었다) 으로 상징되는 이번 파업시위 대처방식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 새 노동정책의 실험 = 새 정부는 이번 파업을 계기로 새로운 노동운동 문화의 모델을 만든다는 의지를 굳혔다.

우선 노동계에 원칙을 벗어난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당초 정부는 파업이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과거 방식의 해결을 검토하기도 했다.

즉, '파업→물리적 진압→주동자 체포→사면.복권.복직' 의 수순을 밟아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주동자를 '영웅' 으로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노동부와 검찰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정부 내에서는 지하철 파업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국정 최대과제인 구조조정은 요원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무력진압 등을 놓고 대응책에 고심하던 정부는 '영국병' 을 치유한 영국의 대처리즘을 연구했다.

마침내 81년의 미국 항공관제사 대량 해고사건을 발견, 전원 직권면직 방침 발표로 배수진을 쳤다.

노동계조차 예상치 못한 이 카드는 한국통신 노조를 무너뜨리면서 지하철 파업을 8일만에 끝내게 했다.

김성중 (金聖中) 노동부 노사협력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투식 투쟁 일변도의 파업은 사라질 것" 이라며 "이는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 이라고 말했다.

◇ 시위대응 변화 =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이 불상사 없이 끝난 데에는 경찰의 바뀐 시위 대응방식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만약 서울대와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 진압했다면 파업 양상은 크게 악화됐을 것" 이라는 게 경찰의 자체 분석.

경찰은 지하철 파업이 시작된 지난 19일 이후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을 벌인 명동성당과 서울대에 대한 경찰 병력 투입을 자제하고 고립작전으로만 일관해 24, 25일 서울대 정.후문에서 벌어진 두차례의 경찰진입 공방전을 빼고는 농성 노조원과 경찰 사이에 충돌은 거의 빚어지지 않았다.

특히 경찰이 파업 기간중 단 한발의 최루탄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경찰의 시위 대응방식이 크게 변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목. 서울대 정.후문 충돌에서도 노조원과 한총련 학생들이 수백개의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졌지만 경찰은 연막탄만 뿌리고 말았다.

시위 진압방식도 자진해산을 유도하는 쪽으로 바뀌어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헬리콥터를 동원해 흙바람을 일으킨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런 변화는 지하철 파업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수를 둬 비난여론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랐던 것. 여기에 올해 들어 평화집회 보장과 시위문화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경찰 지도부의 방침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고대훈.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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