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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별같은 문인 111명, 그들에게 바치는 경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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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1개국 600명 인터뷰로 맞춘 ‘9·11 테러 퍼즐’ 23면 “문학을 여기(餘技)로 접근하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대했문인들을 『나는 문학이다』에서 다뤘다”고 말한 시인 장석주씨. [김성룡 기자]

마흔 넘어 작가가 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달 평균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써내는 초인적 필력을 과시한 작가 이병주(1921∼92). 작은 이병주라도 되는 것 같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55)씨. 두어 달 전 독서일기인 『취서만필』과 명시인들의 시 세계를 노장철학으로 풀어낸 『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두 권을 한꺼번에 펴낸 그가 이번에는 1000쪽이 넘는 두툼한 ‘문인 열전’을 내놓았다. 이광수부터 배수아까지 한국 문학 100년을 빛낸 문인 111명에 대한 작가론을 모은 『나는 문학이다』(나무이야기)가 그것이다. 책은 대중성과 깊이, 모두에서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만만치 않는 분량 안에 문인들의 문학 세계를 촘촘하게 풀어내면서도 정리가 명쾌해 쉽게 읽힌다. 가령 김우창 편의 경우 심미적 이성, 구체와 보편 등 그가 평생 천착한 철학적 논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전하면서 문학평론가로서 단호한 면모도 소개한다. 훌륭한 길잡이 도서로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책 얘기를 듣기 위해 10일 장씨를 만났다. 화제는 문학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의 바둑 실력은 아마 3단 정도다. 문단 최고수들인 성민엽·복거일 등에 이어 자신이 2위 그룹을 형성한다고 했다. 이창호·이세돌·조훈현 등의 기풍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포커에 빠졌을 때는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집중적으로 원리를 연구했단다. “표정, 손짓, 미세한 행동 신호 등을 통해 패를 알아내기 위해 상대방을 뒤흔들어야 이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엇보다 올 가을 명문장, 장자 우화 등에 관한 책 두 권이 더 나온다. 내년 초에는 열 네 번째 시집을 낸다. 놀랄 만한 다산성과 온갖 잡기에 강한 면모는 결국 집중력과 끈기 덕택인 듯 했다.

-어떻게 책 5권을 한꺼번에 내는 게 가능한가.

“출판사를 그만둔 1993년부터 관심 있는 작가들 파일을 만들었다(그는 80년대 후반 저 유명한 시집 『홀로서기』를 출간해 시집을 팔아서도 ‘떼돈’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내 컴퓨터에는 수 백 명의 작가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그 중 일부를 이번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전 4시면 어김 없이 일어나 낮 12시까지 책 읽고 쓴다. 하루 평균 원고지 20장 분량을 쓴다. 눈만 뜨면 뭘 쓰는 셈이다. 저녁 시간에는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한다. 빡빡해 보이지만 그런 생활에 익숙해선지 그리 벅차지 않다.”

-111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내 주관적 잣대에 따른 것이지만 넣지 말아야 할 사람을 다루진 않았다고 본다. 이미 고전이 된 문인들과 요즘 문인들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뤘다. 책은 그들에게 바치는 내 ‘오마주(경의)’다.”

-한국문학 100년간 최고의 문인을 꼽으라면.

“이상과 김유정을 꼽겠다. 모더니스트 이상은 가장 문제적 인물이고 김유정은 골계미학의 정수를 보여줬다. 그들이 활동한 30년대는 백석·서정주·정지용·이태준·박태원 등 한국 문학의 스타들이 쏟아진 가장 풍성한 시기였다.” 

신준봉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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