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출가 윌슨 9월 서울연극제 개막작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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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실험연극의 우뚝 솟은 인물' '관행적 연극기법을 초월해 다른 공연장르와 시각예술을 빨아들여 이미지와 소리가 통합된 새로운 공연형태를 만든 개척자' (뉴욕타임스). '새로운 주된 예술창작품의 징후' (작가 수전 손탁). 이는 전위의 선두에 선 이단아에서 이제는 하나의 양식화된 예술형식을 만들어낸 대가로 자리잡은 미국 연출가 로버트 윌슨 (58) 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20여 년동안 미국과 유럽의 연극과 오페라 등에 기발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이 천재의 작품을 이제 한국에서 볼 수 있다.

윌슨이 오는 9월 막이 오르는 서울연극제 개막작품 '바다의 여인' 의 연출을 맡은 것. 서울연극제가 직접 제작하는 이 공연은 배우 6명 전원이 한국배우로 채워진다. 윌슨은 함께 작업할 배우 오디션을 위해 오는 20일 서울을 찾는다.

19일 1차 오디션 (원서마감 17일) 을 통과한 배우들을 상대로 21일 윌슨이 손진책 예술감독과 함께 2차 오디션을 치루는 것. 02 - 744 - 8025.

연출가들에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연출가로 알려진 윌슨은 서양뿐 아니라 홍콩과 일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나 한국에서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양배우와의 작업도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각보다 시각을 중요시하는 윌슨의 작품세계는 17세까지 언어장애에 시달렸으며 회화와 건축을 폭넓게 공부했던 그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왔다.

이런 사적 배경이 언어보다 시각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무대로 공연계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됐다.

윌슨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그가 입양한 농아소년과 함께 71년에 만든 무언극 '농아의 시선' (Deafman Glance) 이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 초현실주의자 루이 아라공 (1897~1982) 으로부터 "초현실주의의 뒤를 이을, 아니 뛰어넘을 인물" 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76년 그의 기념비적 작품 '해변의 아인스타인' 을 내놓은 후에는 주로 유럽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입센 원작, 수전 손탁 각색의 '바다의 여인' 역시 98년 이탈리아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최준호 교수는 "유명작품을 1인극이나 소수배우만 출연하는 것으로 각색하거나, 언어를 가급적 줄이고 신체와 조명 등 이미지 중심으로 극을 양식화하는 것이 윌슨 작품의 특징" 이라며 "뮤지컬이나 오페라에의 외도는 새로운 아이디의 밑거름이 되는 자양분을 얻기 위한 방법" 이라고 말했다.

세계 수준과 동일한, 아니 오히려 앞서 있는 윌슨의 가세로 경연에서 축제형식으로 전환하는 이번 서울연극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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