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YS의 統營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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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강력히 비판한 통영 (統營) 발언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른바 등산정치.만찬정치에 이어 이번에는 성묘길정치를 통해 현직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린 동기와 배경이 무엇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비공개적이고 사적인 등산모임이나 상도동 자택 만찬의 경우와 달리 金전대통령이 이번엔 공개석상에서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면서 현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는 점에서 면밀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그의 비판의 적실성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金전대통령의 처신에는 온당치 않은 점이 있다고 본다.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았던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국가와 국민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갖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또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 치적에 대해 역사의 평가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현실정치와는 가급적 일정한 거리를 두는 자세여야 할 것이다.

만일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수시로 비판.개입하거나 현실정치에 간여한다면 필경 분란과 갈등의 소지만 만들기 십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꼭 할 말이 있을 경우에도 전후사정을 잘 따져 매우 사려깊고 신중한 방식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金전대통령의 통영발언을 보면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더구나 재임 중 환란 (換亂) 을 초래했던 金전대통령으로서는 좀 더 자중하고 근신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생각이라고 볼 때 동기 여하를 떠나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언행이 국민정서에 맞을는지도 의문이다.

그가 이번에 일부러 현 정권에 비판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자신의 정치적 연고지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것도 석연치 않다.

지역감정에 불을 댕겨 내년 총선을 겨냥, 정치재개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정치권에 나돈다.

그 자신은 이를 억설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역감정구도를 이번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이 이런 의혹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발언이 진중한

처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집권측도 金전대통령의 돌출적 발언에 당혹스럽기는 하겠지만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국민이 金전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집권측과 궤를 같이 하지만 적잖은 국민이 내심 金전대통령이 지적한 고문.도청.언론통제.의원빼가기.선거부정 등의 혐의와 권위주의적 정치행태에 대해선 공감하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직 대통령들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거듭 지적하면서 자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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