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하림 '집으로 가는 길2'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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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 물 속처럼 깊이 흘러 어두운 산 밑에 이르면

마을의 밤들 어느새 다가와 등불을 켠다

그러면 나 옛날의 집으로 가 잡초를 뽑고

마당을 손질하고 어지러이 널린 농구들을

정리한 다음 등피를 닦아 마루에 건다

날파리들이 날아들고 먼 나무들이 서성거리고

기억의 풍경이 딱따구리처럼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나는 공포에 떨면서 밤을 맞는다

- 최하림 (崔河林.60) '집으로 가는 길2' 중

마치 저녁 밥상에서 밥을 많이 먹은 듯 가득하다.

시의 앞뒤가 잘 맞추어진 듯 들쭉날쭉이 없다.

그런 구성 안에서 정작 시는 내재적 산문으로 되고 있다.

다 그만두고 두메 농촌으로 들어간 귀거래사의 시인인데 그에게는 무명의 소심 (素心) 보다 의미의 작심 (作心) 이 있다.

그런데 이 시의 높은 곳은 어떤 일에도 동요되지 않는 단란한 평상 (平常) 의 윤리에 있다.

그래서 최하림에게는 불안이 없는가.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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