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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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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파산 지경에 이르다니 놀라운 일이다.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온 가족에게 행복을 일깨워주는 잡지로 온 세계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타임’ ‘뉴요커’ ‘에스콰이어’의 탄생이 그렇듯 ‘리더스 다이제스트’ 또한 인간주의 이상에 불타는 청년 편집인 월리스가 있었다. 그가 독자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바로 낙천주의·행복주의다. 대공황 때도 전쟁 때도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언제나 이 세상은 멋진 곳이며, 보다 더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드위트 월리스는 1889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월리스는 어릴 적 다락방에 틀어박혀 잡지 읽기에 열중하였다. 마음에 드는 기사가 나오면 얼른 가위로 오려 스크랩하곤 했는데, 이 독서습관이 뒷날 ‘리더스 다이제스트’ 창간의 밑거름이 된다. 농민잡지 출판사에 취직한 월리스가 잡지 편집에 열을 올리던 어느 날 밤, 온 가족이 유익하고 즐겁게 읽을 잡지를 만들 꿈에 부푼다. ‘소리 없는 다수(Silent majority)’를 위한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구상은 이렇게 싹텄다. 1921년, 마침내 월리스는 뒷날 부인이 되는 연인 라일라와 금주시대 그리니치빌리지 밀주공장 지하창고를 빌려 ‘리더스 다이제스트’ 간판을 내건다. 월리스가 꾸미는 품격 넘치는 교양 지면은 금세 독자 마음에 스며들어 갔다. 그는 좋은 기사를 찾아내 재기 넘치게 간추리는 편집으로 감동의 잡지를 엮어갔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30년대 해외판에도 성공, 세계적 잡지로 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곳곳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은 이 포켓판 잡지를 열심히 탐독한다. 기사 내용들이 건전하고 낙천적이었으므로 그 인기는 주둔국에서도 대단했다. 어느덧 이 작은 잡지가 해외 선교사 역할까지 훌륭히 해내 미국인은 질서를 존중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민주주의 국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다. 할리우드 영화나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등이 수출하는 악착스럽고 냉혹한 미국인 이미지와는 대조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존 F 케네디의 U보트 전투 활약담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려 미국인에게 참다운 영웅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 기사는 무명이던 케네디의 이미지를 상승시켜 정계 진출을 돕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노조 없는 최고 대우와 업무환경이 우수한 꿈의 회사로 평가받아 왔다. 500달러로 시작한 이 포켓잡지를 수십억 달러 대기업으로 키운 월리스는 1973년 83세로 은퇴한다. 최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파산보호를 신청, 재기를 도모할 것이라 한다. 인간을 황폐케 만들어가는 미디어들에 의한 선동·선정 시대에 참 안타까운 소식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한때 78개국에서 1억30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했었다. 한국 또한 6·25 전란 부산 피란지에서 한국어판이 나와 좋은 읽을거리로 얼마나 사랑을 받았던가. 나도 애독자의 한 사람이었다. 나의 출판 평생 멘토 ‘리더스 다이제스트’. 월리스의 착한 꿈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