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씁쓸한 美상무 방한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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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윌리엄 데일리 미국 상무장관의 이번 방한은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투자촉진이 그 목적이었다.

그와 함께 온 17명의 기업대표단은 내세운 명칭부터가 '기업활동증진사절단' 이었다.

그러나 사흘간의 방한동안 이들의 실제활동은 내용면에서 경협촉진보다는 통상현안을 다그치기 위한 '통상압력행차' 측면이 더 강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절단의 방한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방미때 우리측이 희망했고 클린턴 대통령이 이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다양한 분야의 기업대표들로 짜여진 사절단을 맞아 우리측은 양국간 산업협력증진에 큰 기대를 걸었고 주된 협의창구도 통상교섭담당부서가 아닌 산업자원부를 내세웠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데일리 장관이 입국기자회견에서 한국산 철강의 덤핑혐의, 스크린쿼터제 문제 등 통상현안을 집중 제기하면서 빗나갔다.

투자협력과 원만한 통상관계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고, 특히 산업의 주무장관인 상무장관 입장에서 통상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이나 주문을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데일리 장관은 일찍이 "99년은 무역위기의 해가 될 것" 으로 예고했고,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올들어 슈퍼301조 부활과 일련의 불공정무역제소 등 한.미간 통상현안에 대한 미국의 강공드라이브가 몰려오던 터였다.

따라서 그의 방한을 맞아 양국간 투자협정 마무리는 물론 미국 기업의 한국 공기업 민영화 참여를 비롯한 산업협력, 그리고 양국간 통상이견에 대한 상호이해와 조율을 우리는 기대했었다.

데일리 장관 일행은 아무런 발표나 기자회견없이 한국을 떠나 이번 방한에서 이들 문제분야에서 얼마만한 진전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우리 측과의 일련의 협의과정에서 흘러나온 얘기들로 미루어보아 투자협정 및 통상현안에 관한 양국간 입장차나 이견은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는 인상이다.

우리측이 고대하는 투자촉진에 관해 '미국은 태세가 돼 있는데 한국의 수용태세가 덜 돼 있다' 며 스크린쿼터문제를 걸림돌의 하나로 집중 거론했다.

스크린쿼터제에 대해 이미 우리는 점진적으로 철폐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영화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 그 사회의 가치관이 실린 '문화' 며 통상 차원이 아닌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미국측의 이해를 촉구해왔다.

국내 영상시장의 80%를 할리우드영화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20%마저 내놓으라고 요구함은 누가 봐도 무리다.

국산영화의 점유율이 프랑스처럼 40%에 이를 때까지 보호장치를 유지해달라는 우리 영화산업계의 요구가 억지일 수만은 없다.

양국간 통상현안이 상무장관의 한 두차례 방문으로 쉽게 풀릴 리는 만무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입장차를 존중하며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진지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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