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75.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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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8장 도둑 ⑦

"동상 사람 잘못 봤뿌렀어. 나가 잇속 바라고 장터에 나온 줄 알어? 갯벌 긁다가 허리 다쳐 시난고난하는 마누라가 보기 딱해서 신명 떠름하라고 장에 데불고 나온 사람이랑게. 나가 좌판에서 슬쩍 비켜주면, 마누라가 고막을 막 퍼주거든 한 주발에 2천원하는 고막을 사자는 사람이 나섰다 하면, 그게 반갑기만 해서 나 눈치 볼 것 없이 두 주발씩이나 겁나게 퍼줬뿌러.

나한테 시집 올 당시부터 원체 손이 큰 여자였는디, 그 버릇을 새끼 둘을 치고 나서도 못 고쳐뿔데. 그라고 요새 장바닥에는 구할이 여자여. 상인이고 장꾼이고 남자 찾아보기가 쉽던가이? 요새 장터는 여자들로만 싹쓸이를 했뿌렀어. 사내 명색은 장모서리에 서 있기조차 사나워서 나는 운전수 노릇이나 하면서 막걸리나 마신당게.

요새는 막걸리도 수입것인지 파장 무렵 되면 미련없이 깨불제. 이봐, 나 인제 가뿔라네. " 얘기는 그때까지 태호를 상대로 하였지만, 선술집을 나설 때, 손을 흔들어 보인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었다.

마침 선술집에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아가씨가 주방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고막장수인 그와 자주 눈길을 마주치곤 하였었다. 선술집을 나와서도 그는 좀처럼 태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아내가 대신 치다꺼리하고 있는 용달차 쪽으로 힐끗하고 나서 태호의 괴춤을 슬쩍 잡아끌며 말했다.

"나하고 장사를 같이 안해뿐다니 무리하게 할 말은 없게 됐뿌렀지만, 요시절 딱 지나고 칠월 하순쯤 해서 고흥으로 놀러와 보랑게. 그때 오면 나가 샛서방 반찬이라는 돔구이 맛을 한번 보여줄라네. 혹간 금풍생이구이란 말 들어봤는지 모르것네잉.딱돔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디.

요것을 맛보면 죽여준당게. 우리는 금풍생이구이라 않고 샛서방 반찬으로 부르지야. 얼매나 맛이 있으면, 본 남편 두고 샛서방 입맛 돋굴라고 구워주는 생선으로 별호가 났을라. 그게 모두 득량만에서 잡는 돔으로 굽는당게. 껄쩍지근하게 생각 말고 한번 와. 오겠지잉? 안오면 내가 팍 쌔려버릴라네. "

장터 물리나 익히려고 수작을 걸었다가 훈계까지 듣는 꼴이 되었으나 시달림을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좌판까지 태호를 끌고가서 자기 아내에게 광양장에 고막 팔러 왔다가 다 커서 군대까지 갔다 온 동생 하나를 얻게 되었다고 떠벌렸다.

그와 가까스로 헤어져서 승희가 벌인 난전 좌판을 멀찌감치 서서 엿보았다.

파장 무렵이어서 한낮과 같은 북새통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장꾼들의 입질은 여전한 편이었다.

그제서야 태호는 오징어의 매기가 시원찮았던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영광은 고로쇠 수액의 원조지라 할 수 있는 고장이었다.

고로쇠 수액이 한물로 뽑히는 3월 중순께면, 마른 오징어와 같은 짠 건어물의 수요가 늘어난다는 소문은 허튼말이 아니었다. 짠 것을 먹어야 갈증으로 많은 양의 수액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아직은 시장 가게로 내다 파는 고로쇠를 찾기 어려웠다. 열흘이나 보름쯤 지나야 고로쇠가 한물로 쏟아져 나올 것이고, 수액을 겨냥하고 찾아들 외지인들의 출입이 빈번해질 조짐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의 오징어 장사는 열흘이나 보름 정도 이른 편이었다. 한갓진 남쪽 고장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시세도 그처럼 민감했다. 다음 장날의 매기를 예견하고 위안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트럭으로 가서 적재함을 정리하고 있는데, 빈 생선상자를 다섯 개나 포개 어깨에 얹은 형식이가 등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형식은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신바람이 났었던 것이다.

오후 4시였다. 묘목 장수들은 아직 거두지 않았지만, 봄나물 팔던 노파들은 시든 나물 바구니 등을 챙기고 있었다.빈 상자를 적재함에 내려놓은 형식은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부리나케 한길을 가로질러 맞은편 골목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태호는 그를 소리쳐 부르려다 말았다. 요사이 와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는 것을 얼른 떠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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