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유럽은 美 들러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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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의 유고 공습은 유럽의 '부재 (不在)' 를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직간접으로 공습에 참여하고 있는 13개국 중 11개국이 유럽국이다.

하지만 유럽은 NATO를 앞세운 미국의 개입 의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끌려가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단독개입이 아닌 NATO의 공동개입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들러리' 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실제 동원된 화력에서도 유럽국들의 기여는 상징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80% 이상을 미국이 혼자 떠맡고 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IFRI) 관계자는 유럽 문제를 유럽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면서 "랑부예 평화안의 실패로 유럽은 유럽 안보질서로 복귀할 수 있는 호기를 놓쳤다" 고 말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지난달 파리 근교 랑부예성 (城) 평화회담에서 타결된 평화안이 유고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NATO 창설 50주년을 맞아 다음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NATO 정상회담을 앞두고 코소보 사태의 향배는 유럽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럽 스스로 유럽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선례를 만들 경우 NATO의 장래에 관한 논의에 미국과 대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유럽국들의 기대였다.

유럽국들은 21세기 새 국제질서에서 NATO를 유럽에 개입하는 지렛대로 묶어 두려는 미국의 의도를 견제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놓여 있다.

독자 방위체제 구축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코소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은 유럽국들에 중요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유고 정부에 의해 결국 평화안이 거부됨으로써 유럽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유엔 안보리 결의없이 이뤄진 공습의 적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력개입 주장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프랑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유고 공습의 진정한 함의는 미국식 NATO의 존속" 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의도대로 NATO가 위상을 재정립, 미국이 유럽에서 경찰 역할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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