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면책특권 없다' - 영국 상원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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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영국 최고 법원인 상원재판부가 24일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면책특권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전세계 독재자들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한 단죄의 길이 열렸다.

7명으로 구성된 상원재판부는 이날 6대1로 피노체트가 집권 중 저지른 반인권적 범죄로 인해 기소를 모면할 면책특권이 없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또다시 그의 면책특권을 부인한 것이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국제사면위원회) 등 인권단체들은 즉각 세계 정의와 인권사상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며 환영했다.

이날 판결로 국제사법재판소나 인권단체들이 근절시키려 노력해왔던 학살.처형.고문 등 인권유린 행위가 어느 국가.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

현재 제3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상황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영국이 고문금지 국제협약에 가입한 88년 이전에 자행된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동시에 내렸다.

피노체트가 저지른 반인권 범죄는 대부분 88년 이전에 이뤄졌다.

재판부는 스페인측 검사팀이 기소한 32건의 혐의 중 73년 군사쿠데타 직후부터 88년 9월까지 발생한 사건에 대한 혐의 29건을 기각했다.

기각되지 않은 것은 88년 이후 저질러진 고문.살인음모 등 3개 항목 뿐이다.

판결 직후 런던.산티아고 등지에서 피노체트의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올린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판결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을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은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으로 그는 이르면 다음주 내로 송환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스트로 장관이 영국과 칠레간 외교.경제적 이해 등을 이유로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을 거부할 경우 피노체트는 즉시 귀국이 가능하다.

상원 재판장 브라운 윌킨스경은 "피노체트의 혐의가 대부분 기각된 만큼 스트로 장관이 그의 송환 여부에 대해 재고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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