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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인터뷰] 영화 '내마음의 풍금' 주연 이병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내 마음의 풍금' (이영재 감독.27일 개봉) 엔 추억의 풍경들이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낡은 마루 교실에서 울려퍼지는 풍금소리, 아이들의 함성으로 들뜬 초등학교 운동장의 기억들을 피워올리는 힘이 있다.

그 풍경안으로 들어간 이병헌 (28). 방에선 아이들의 일기장을 읽다가 킬킬거리고, 학교에선 동료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으로 얼굴을 붉히는 스물 한 살의 선생님이다.

'남성성' 의 신화를 좇는 사내가 아니라 깊은 내면의 우물에서 '풋풋함' 을 길어올리는 소년이 되어버린 이병헌. '변신이 아니라 내면을 보여준 것' 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 시사회를 여러번 거칠때까지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들었다. 왜 그랬나.

"영화를 보기 겁났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보고 얘기해주기 바랬다. 기대도 컸고 그만큼 긴장됐다. 바로 며칠전에야 일반 시사회 관객들 틈에 끼어서 겨우 보았다. "

-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그것도 촌스럽고 심지어 앳된 선생님 역할이라니.

"시나리오가 너무 예뻤다. '소나기' 같은 단편을 읽은 느낌이라면 이해하겠나. 마치 마음이 깨끗하게 씻겨져내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느때보다 출연을 쉽게, 그리고 빨리 결정했다. 남들이 걱정해줄 만큼. "

- 주로 터프한 역을 많이 맡아오지 않았나. '예쁜' 시나리오 얘기는 의외다.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이미지가 남성다운 쪽으로 굳혀졌다는 걸 알지만 오히려 나는 다른 쪽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시네마천국' (다섯번 봤다) 이다. 이것도 의외인가?"

- 그렇다면 그간 주로 터프가이, 반항아 등의 배역은 일부러 택한 것인가.

"그렇다. 사내다움, 강직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백야' 에서도 그런 것에 집착했는데 오히려 다른 섬세한 면을 살려내지 못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 "

- 앳된 시골선생님 성격연구는 어떻게 했나.

"캐릭터를 연구하기보단 그의 나이를 생각했다. 스물 한 살이란 나이, 조금만 부끄러워도 얼굴이 빨개지는 그런 섬세한 느낌들을 떠올렸다. 또 이번 촬영 중엔 일부러 평소 하던 운동을 전혀 안했다. 운동을 하면 자꾸 팔이 벌어지는데 선생님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

-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지상만가' 등 출연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에서 빛을 보지 못했는데.

"영화는 혼자서 완성시킬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작품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의 실패를 일종의 '이병헌 징크스' 로 뭉뚱그리는 것은 불쾌하다. 징크스란 미신에 불과하다. "

- 전작들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그동안 출연했던 영화들에서 내 관심은 '인물' 에 치중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역할을 맡고 싶다가 아니라 이 시나리오에 녹아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맡을 인물에 도취되는 것보단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

- 몇몇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왕자병' 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을 땐 당혹스럽다. 사실 난 신인때부터 '잘 해낼 수 있다' 는 자신감이 강했다. 자신감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잘못 비춰지면 '자만심' 으로 보이기도 하는가보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의도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누구로부터 '옛날의 그 자신감 다 어디로 갔냐' 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자신감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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