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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인은 대학을 위해 존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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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전에 서울의 한 유수한 사립대학의 이사장이 대학의 참된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교수·교직원·학생은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대학의 진짜 주인은 아니다. 교수와 교직원은 ‘대학을 직장으로 택한 사람들’, 곧 노동자이며 학생은 ‘교육 서비스를 받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면 누가 주인인가. 기업의 주주에 해당하는 학교법인이 주인이다. 학교법인이 대학의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학교법인의 이사회가 대학의 운영 주체다. 그리고 ‘이사장은 주주 대표 격’이다. 곧 자신이 해당 대학의 주인이라는 얘기다. 그의 결론은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올바로 정립할 때만이 대학의 발전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이한 느낌이 든다. 사립학교법과 사립대학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이사장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알며, 내가 아는 한 사립대학의 구성원 가운데 그 누구도 감히 재단에 도전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위의 이사장은 목청을 높여가며 자신이 대학의 주인이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 고등교육의 왜곡된 법체계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럽이나 제3세계의 나라들 사이에는 아예 사립대학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에서 사학의 비중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사학을 특정인의 소유물로 보는 천박한 관념이 유독 여전히 강하다. 더욱이 우리의 사립학교법은 대학을 학교법인의 영조물로 보아 그것의 독자적인 법인격은 물론 정체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대학이 법적으로는 학교법인의 피조물이지만, 현실에서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이 대학의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대학은 교육과 연구라는 고유한 목적을 갖는 독자적인 조직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를 주인이라고 한다면, 교수·교직원·학생은 당당히 학교의 주인이다. 그러기에 사립학교법도 적어도 그 목적에서는 교육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대학의 실체성을 부인한들, 대학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스스로 주인이다. 법적으로는 학교법인이 앞서지만, 존재론적으로 대학은 완결적인 하나의 전체다. 이것을 현행의 법체계가 부정하고 있기에 암묵적으로 인정받지 않을 경우 대학은, 그 구성원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학교법인 측은 이에 맞서 자신이 주인이라고 외쳐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실과 법 사이의 괴리를 걷어내야 한다. 대학의 정체성을 인정해 그 사단적 성격을 사립학교법에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학이라는 이 특수한 인간 생태계는 주인의식을 갖고 발전의 엄청난 동력을 발휘할 것이다. 학교법인, 이사회, 이사장도 ‘참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학생이 내는 등록금 위주의 학교 경영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학교법인이 대학을 위해 존재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