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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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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0년 미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과거의 경쟁자들을 중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선 1년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라이벌이었던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윌리엄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이 중 시워드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매입하는 등 서부 개척에 큰 업적을 남겼다.

상대 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스티븐 더글러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링컨은 남북전쟁 발발 직전 더글러스에게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부와 남부의 경계주를 방문해 연방 이탈을 막아달라고 요청했고, 더글러스는 흔쾌히 사명을 완수했다. 측근들로 둘러싸인 정치를 거부한 인사 정책은 링컨의 가장 위대한 면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역사에서는 이보다 더 극적인 작적금우(昨敵今友)의 예도 눈에 띈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의 명재상 관중(管仲)의 이야기다. 환공은 왕위 쟁탈전에서 형인 공자 규(糾)와 경쟁하는 사이였고 관중은 규의 심복이었다. 내란이 한창일 때 환공은 관중이 쏜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환공은 대위에 오른 뒤 관중을 죽이려 했다. 대다수 공신들도 “관중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환공의 측근이며 관중의 친구인 포숙이 “온 가족의 목숨을 걸고 관중을 추천하겠다”고 설득한 끝에 환공은 노여움을 풀고 관중을 등용한다. 결국 관중은 재상에 올라 부국강병을 이룩했고, 제 환공을 오패(五覇)의 첫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이 정치”라고들 하지만 관중과 환공 같은 성공 사례는 흔치 않다. 관중이 아무리 현인이었다 한들 환공이 끝까지 신뢰하지 않고, 포숙이 다른 신료들과의 사이를 중재하지 않았다면 어림없었을 일이다.

한때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로도 꼽혔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로 나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론을 비롯해 현 정권의 경제 정책에도 수시로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세간의 호기심은 벌써부터 정 후보자의 총리직 수행이 어찌 진행될지에 몰려 있다. 상아탑을 벗어난 정 총리 후보자가 복잡다단한 정계에 적응할 수 있을까. 과연 포숙의 역할을 수행할 조정자는 있을까. 새 총리 기용은 현 정권의 국량을 시험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듯싶다.

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