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책의장등 전격 교체한 속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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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15일 국민회의 김원길 (金元吉) 정책위의장을 교체했다.

설훈 (薛勳) 기조위원장도 바꿀 예정이다.

金의장은 국민연금 확대실시 연기 발언이, 薛위원장은 임기말 내각제 발언이 각각 이유였다.

두 사람 모두 '설화 (舌禍)' 를 입었고, 입을 만했다.

두 사람 각기 공동정권 양대 주주의 한 사람인 김종필 (金鍾泌) 총리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문제와 관련, 金총리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내각제 문제에 대해선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나 국민회의로선 '성의표시' 를 불가피하게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흥미있는 대목은 金총리의 불쾌감을 적어도 형식적으론 청와대가 아닌 국민회의가 헤아렸다는 점이다.

14일 고위 당직자회의에서 두 사람의 경질을 건의키로 결정했다.

통상 이런 사안은 고위 당직자회의를 열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청와대가 곧바로 결정해 발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그것을 건의하는 절차를 밟았다는 것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최근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는 이런저런 문제로 갈등이 표출돼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결국 국민회의가 金총리를 챙기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함인 듯하다.

그렇다면 국민회의로선 뭔가 대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내각제일 수도 있고, 당장 현안에 대한 자민련의 양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국민연금 확대실시의 변형이라든가, 다른 현안에 대한 책임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놔두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金총리에 대한 배려의 연장이다.

특히 金의장 부분과 관련해서 그렇다.

우선 국민연금 문제만 해도 문제 소지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있다.

그럼에도 해당 장관은 건재하다.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연금 확대실시 연기에 대한 국민여론 수용을 주장한 金의장이 책임을 졌다.

따지고 보면 정당의 역할이 그런 것임에도 책임을 진 것이다.

최종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사항을 사전에 언론에 밝힌 데 대한 내부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갖게 한다.

한.일 어업협정도 마찬가지다.

해양수산부장관은 사의를 표명한 지 꽤 오래됐으나 사표는 수리되지 않고 있다.

결국 두 장관 모두 자민련 몫의 국무위원들이란 점이 감안된 것이고, 당장 金총리로선 한 게임을 이겼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음에도 지나쳤다는 점에서 金총리로선 金대통령에게 '빚' 을 진 측면 또한 강하다.

그 빚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는 미지수지만 金총리로선 마냥 속 편한 것이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일은 자민련쪽에서 벌이고 우리가 당했다" 는 국민회의측 인사의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물론 단순하게 이해할 수도 있다. 청와대나 국민회의쪽 주문이 그렇다.

당장 선거를 앞두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란 얘기다.

아무튼 이날의 전격 경질은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때문에 문제장관들에 대한 인책 내지 다른 조치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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