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소정과 금강산'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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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에게 있어 금강산은 무엇일까. 다만 이 나라의 산이고 돌이고 물일 뿐일까. 아니다.

거기 우리네 역사가 있고, 그림이 있고, 노래가 있고…. 그 산 속의 산, 돌 속의 돌, 물 속의 물을 만나러 우리는 금강산에 간다.

꿈 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금강산을 꿈인 듯 싶게 처음 열린 금강산 가는 뱃길 따라 첫발을 내디뎠고, 이윽고 금강장엄 (金剛莊嚴)에 눈을 뜬 것은 삼선암 앞에서였다.

만물상을 등에 지고 돌아서는 순간 번쩍! 돌기둥 하나가 하늘을 떠받치고 서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소정이 휘두른 붓자국이 아닌가.

정말 그랬었다.

평소에 정선, 최북, 이인문, 김홍도 등 조선조의 광채 나는 큰 붓들이 금강산을 다 그렸거니 했었는데 삼선암 앞에서 그런 이름들은 사라지고 소정의 필력이 용트림으로 하늘을 오르는 것이었다.

저 불끈 솟은 수컷! 이제야 처녀에게 홀려서 신선이 되었다는 세 사내의 속마음을 알겠네. 아무튼 이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금강산에 가서야 나는 소정 변관식 (卞寬植) 금강산 그림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까닭으로 그가 태어난지 1백년이 되는 해에, 그것도 반세기 막혔던 금강산이 눈앞으로 다가선 이 마당에 '소정과 금강산' (4월 11일까지) 이 펼쳐지는 호암갤러리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금강산을 그렸던가.

내가 눈으로는 다 못 본 옥류동, 구룡폭포, 해금강 등을 소정은 바로 이것이 아니더냐 싶게 다시 그려주었고 가보지 못한 내금강의 단발령, 진주담, 보덕굴이며 외금강의 총석정 등이 산을 보고도 눈에 담아낼 수 없는 빛과 소리들까지 불러 내놓고 있었다.

소정은 일제 하에서 8년 동안을 금강산을 찾았다.

그러고도 금강산을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안 그린 것일까, 못 그린 것일까. 그가 삼선암을 그린 것은 1959년의 일이니 금강산을 오르내린지 20여 년만의 일이다.

무수히 눈 속에 가슴 속에 담았을 터이고 무수히 스케치를 했을 터인데 왜 그토록 오래 묵혀서야 비로소 붓을 들 수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소정만이 알고 있을 일이나 그 궁금증을 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바로 그의 그림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층 전시실에는 소정과 청전 (靑田) 이상범 (李象範) , 심산 (心汕) 노수현 (盧壽鉉) , 묵로 (墨鷺) 이용우 (李用雨) 등 근대 한국화를 일으킨 동연사 (同硏社) 네 사람의 대표작품이 한국화의 진수를 펼치고 있었다.

이근배 시인.재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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