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카프카와 카사노바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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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프라하
원제 Kafkas Prag, 클라우스 바겐바흐 지음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152쪽, 9500원

카사노바의 베네치아
원제 Casanovas Venedig, 로타 뮐러 지음
이용숙 옮김, 열린책들, 168쪽, 9500원

책을 만지고 쓰다듬는 느낌을 중시하는 아날로그형 독자들이 반가워할 책이다. 표지를 넘기면 작은 활자가 빽빽하게 박힌 지도가 나온다. 번호가 붙은 곳마다 설명이 달려 있다. ① 생가 ⑧ 카프카가 다닌 대학 ⑪ 카프카 일가의 집…. 여행은 시작됐다. “저기, 카프카가 간다!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의 고향, 프라하다.” 체코가 낳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따라가는 이 희귀한 여행의 안내자는 카프카 연구가인 클라우스 바겐바흐(74)다.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도 독자는 이미 카프카의 고향 프라하에 도착했다.

벌레로 변신한 한 남자를 등장시킨 ‘변신’으로 현대문학의 지형을 뒤집어놓은 카프카는 태어나고 자란 도시 프라하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프라하, 사람도 종교도 스스로를 상실한다”라고 써놓고도 그는 프라하를 떠나지 못했다. 자기 존재에 몸을 떠는 인간의 실존적인 불안, 풀 길 없는 운명의 부조리함을 치밀하게 묘사했던 카프카와 그의 문학을 키운 것은 프라하일지 모른다. 카프카는 프라하를 심하게 분열된 도시로 체험했다. 직장이었던 노동재해보험협회에서 일이 끝나면 시내를 이리저리 쏘다닌 뒤 밤 늦게 책상에 앉아 소설을 집필했고 끝내 결혼하지 않은 약혼녀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카프카가 살았던 집들은 지금도 남아있고, 그가 돌아다니던 골목길도 그대로다. 길라잡이 바겐바흐는 카프카가 무엇을 보았는지 독자가 헤아릴 수 있도록 차근차근 데려간다. 해묵은 흑백사진이 길동무다. 카프카는 손가락으로 다니던 학교며 사무실을 가리키는 몇 개의 작은 원을 그린 뒤 말한다. “제 인생은 이 작은 원 속에 갇혀 있어요.”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아테네라 하지 않고 ‘세계’라 했다지만 카프카에게 세계는 프라하였다.

“카프카는 열광적인 산책가였으며 도시의 인디언이었다. 그것은 카프카의 글 쓰는 방식과 관계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는 미리 메모를 하거나 초고를 글로 작성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준비작업을 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끔찍한 세계.’그러다 대부분 밤에 단숨에 글로 옮겼다. ‘내가 어제 산보하면서 전체를 보았던 관점!’이라고도 썼다.”

카프카가 프라하란 도시가 키워 낸 작가라면 자코모 카사노바(1725~98)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기른 ‘인물’이었다. 오늘날 ‘타고난 바람둥이’ ‘연애 대가’‘호색한’의 대명사로 왜곡된 카사노바의 모험은 늘 베네치아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평생을 쫓기듯 유럽을 떠돌아야 했던 카사노바는 베네치아를 그리워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베네치아에 맞는 사람이 아니거나 베네치아가 나에게 맞는 곳이 아니거나, 아니면 둘 다였다.”베네치아를 절실하게 원한 이의 역설은 이렇듯 처절하다.

‘세기의 로맨티스트’로서, 또한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서 카사노바는 베네치아를 꿈으로 여긴듯하다. 독자를 카사노바의 베네치아로 이끄는 로타 뮐러(50)는 1998년 카사노바 사후 200주기에 펴낸 이 여행 안내서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카사노바와 베네치아 사이에 이루어진 연애의 역사를 좇아간 이 책은 엄격한 역사가라면 허락하지 않았을 너그러운 탈선을 저지른다.”

카사노바는 자서전 『내 인생 이야기』에서 베네치아 시 전체를 매끄럽게 헤엄치듯 다닐 수 있는 길찾기의 명수로 나온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는 모험의 무대였다. 그 안에서 카사노바는“수다를 떨고 사랑을 나누고 먹고 마시면서” 연애 대장이자 지적 모험의 탐구자로 베네치아 전체를 떠돌아다녔다.

카사노바 뒤를 훔쳐보며 베네치아를 거니는 일은 미지근해진 사랑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되살리는 여행이 된다.

이 두 권의 특별한 여행 안내서는 독일 바겐바흐 출판사가 펴낸 ‘작가와 작가의 도시 이야기-살토’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제임스 조이스와 파리’ 등이 출간 예상 목록에 올라 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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