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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유리·계단이 좋아서 … 아이들은 학교가 즐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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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비전관(2007건축가협회상·서울시건축상). 강당·학생식당·미술실·도서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이 건물이 예쁘고, 쾌적하고, 건물 사이 마당과 계단에서 자유롭게 쉴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건축사진가 김재경 촬영, 경영위치 제공]

중고교 시절의 학교를 회상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공간은 어디일까. 긴 시간을 주로 교실에서 보냈지만 추억 속 공간은 체력장 연습을 하던 운동장이나 특별한 행사가 열렸던 대강당, 친구와 함께 앉아 수다를 떨던 계단 또는 큰 나무 아래 의자는 아닐까.

학교후배인 건축가 강원필(45)씨와 건축설계연구소 ‘경영위치(www.kywc.com)’를 운영하는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46)가 서울 순화동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의 신축교사 설계를 맡게 됐을 때 머리에 그린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 될 ‘즐겁고 명랑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복도나 운동장 아니면 갈 데가 없는 막힌 공간이 아니라 좀더 열려있고, 계단·복도·식당에서도 공간이 주는 다양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 선배로서의 마음, 조만간 고등학생이 될 딸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그의 바람은 빗나가지 않은 듯하다. 1일 이른 저녁 이화외고를 찾아갔을 때, 그가 설계한 ‘비전관’ 주변은 쉬는 시간을 활용해 줄넘기하고, 친구와 함께 서서 MP3로 음악을 듣는 소녀들의 모습으로 생기가 넘쳤다.

이 학교의 장경진(불어과1)양은 “다른 학교의 단조로운 건물과 달리 비전관은 한쪽 바깥벽이 모두 원색의 유리로 이뤄져 밝고 개방적인 느낌”이라며 “이 건물은 이화외고생들의 큰 자랑꺼리”라고 말했다.

◆일상의 교재가 되는 건물=“비전관은 1954년에 지어진 기존 교사(스크랜튼관)에 이어 증축하는 형식이었어요. 땅이 좁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연구해야 했죠. 역사가 있는 건물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트랙처럼 순환하는 복도, 두 건물 사이에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길’과 ‘마당’, 그는 이곳의 복도와 사이공간을 이렇게 불렀다. 마당은 두 건물을 잇는 다리면서 2·3층의 발코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건물은 단조롭지 않아야 했다. 안팎으로 원색 컬러를 부분부분 쓰고, 복도에 돌출 부분을 만들어 불규칙함을 더하고, 외관은 컬러 루버로 장식했다 미적 효과를 내는 동시에 주변 건물로부터 학생들을 시각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이 공간이 학생들에게 자유로움과 다양함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교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고 그는 설명했다.

◆자연도 벗이다=대안학교로 유명한 이우학교(성남시 분당구·2005건축가협회상)도 ‘자유로움’의 개념을 담아낸 공간으로 손꼽힌다. 이우학교는 교육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세운 학교로 김 교수의 설계안은 2001년 현상공모에서 당선됐다.

“‘이우’란 이름은 신영복씨가 지은 것으로 ‘벗과 함께’란 뜻이죠. 그래서 그 ‘벗’이 무엇일까부터 생각하며 출발했어요.”

그가 생각한 ‘벗’은 자연, 친구, 선생님, 이웃, 공동체였다. 그린벨트 지역의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땅의 경사를 그대로 쓰고, 대지 위에 큰 덩이를 앉히는 대신 건물을 아기자기한 지형에 맞춰 쪼개는 형태로 가기로 했다.

건물이 쪼개져서 생기는 교사간 간격과 층고문제는 첨단 시공 기술로 해결했다. 역시 이곳에도 학생들이 쉴 수 있는 발코니, 건물을 잇는 길과 같은 복도, 건물과 건물 사이의 마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친환경 건축을 위해 연구를 많이 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공사기간을 짧게 하고 현장 공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립식으로 했죠. 나중에 우연히 토요일에 학교에 들렀을 때 마당에서 그곳 선생님의 결혼식이 열리는 풍경을 보고 가슴이 찡했어요. 아, 이 마당이 즐거운 학교를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구나 해서요.”라고 말했다.

김승회 교수는 서울대 건축과를 나와 미국 미시건대 건축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7년간 진행해온 보건소 연작으로 유명하다.

보건소와 학교·교회(영동교회)·장신구박물관 등 ‘공공성’이 강한 건물을 많이 해왔지만 ‘주택’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사람의 치열한 삶을 담아내는 주택이야말로 “내 건축의 원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 때 북촌 한옥을 누비고 다니며 한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지지하는 힘”이라며 “앞으로도 ‘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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