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에서 뛰노는 열린학교 그림통해 창의력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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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번에 왔을 때와 연못색깔이 어떻게 달라졌지요?" "그때는 꽁꽁 얼어서 하얀색이었는데 지금은 초록색깔이 됐어요. " 일요일인 지난달28일 오후 2시30분쯤 경복궁 향원정 앞. 숲속학교 원장인 김정숙 (金貞淑.43) 씨가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30여 명의 아이들이 목청을 높여 대답한다.

김원장을 따라 연못 주위를 한바퀴 돌아본 아이들은 "선생님, 저 물고기가 전엔 안 보였는데 지금은 막 헤엄치고 놀아요" "그땐 얼음이 얼었으니까 물고기가 얼음 밑에 숨어있었지" 하며 떠들어댄다.

숲속학교는 김원장이 열린 미술교육을 표방하며 지난 97년 시작한 미술교육 야외학원. 29세에 늦깍이로 경희대 미술교육학과에 입학, 이대교육대학원을 졸업한 金원장은 두차례의 개인전을 연 바 있는 화가.

꼬마 화가들에게 창의력을 길러주려면 모범답안식 그림 그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야외미술교육의 장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처음엔 그가 다니던 성당 어린이 위주로 10여 명에 불과 했으나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4~13세 어린이 40명으로 늘었다.

"처음에는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성미산에서 수업했어요. 산마루도 낮고 산등성이가 길게 뻗어있어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공간이었지요. " 김원장은 숲속학교의 제1원칙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리는 것' 이라고 설명한다.

그때 시도했던 '자연속의 한 공간이 계절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살펴보기' 라는 주제는 한 달에 한번 경복궁 향원정 수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달 세차례의 수업은 미술관.박물관 나들이, 철새.야생화 같은 자연생태 탐사로 꾸며진다.

향원정 주변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은 김원장의 말대로 자신이 가장 색깔을 많이 찾은 장소에 엄마.아빠와 함께 자리를 펴고 앉았다. 이날 그림의 포인트는 연필 스케치를 하지 않고 포스터 칼라로 색감을 마음껏 표현하기.

"그때 그때 알맞은 재료를 정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전날 향원정에 나와 뭐가 바뀌었나, 뭘 쓰면 좋을까를 살펴보지요. " 지난달은 연못이 얼어붙어 만들어낸 갖가지 무늬들을 크레파스로 색을 칠해 긁어내는 스크레치 기법으로 표현해 봤다.

"큰 애는 42가지, 작은 애는 7가지 얼음무늬들을 찾아내 스크레치했어요. 주제를 주고 막연히 '예쁘게 그려라' 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박유하 (10).종후 (7) 형제를 데리고 나온 유현주 (40.서울은평구신사동) 씨의 말.

숲속학교에 참여한지 한달이 됐다는 유형택 (8.안양석수초등2) 군의 어머니 이숙영 (33.안양시석수3동) 씨는 "직접 데리고 나와야 하고 주말을 희생해야 하는 점도 있지만 아이가 재미있게 뛰어노는 것 같아 다행" 이라고 말했다.

추위로 곱은 손을 호호 불면서도 2시간이 지나도록 아이들은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김원장은 "추운 곳에서도 뛰노는 씩씩한 아이들이 됐으면 한다" 며 "숲속학교는 비가 와도 수업을 한다" 고 들려줬다. 비나 추위도 자연의 한 변화이기 때문. 두달 전 향원정 수업 땐 부슬비 속을 뛰어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꼭 숲속학교에 참여하지 않아도 부모님들이 나름의 원칙만 확실하면 훌륭한 미술교육을 시킬 수 있다" 는 것이 김원장의 신조. ▶아이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 '그림을 이렇게 그려야 한다' 고 강요하지 않으며▶아이 그림에 어른이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하고 ▶미술관.박물관 관람은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지루한 설명보다는 느낌을 중요시하고 ▶단순히 '그림 그리기' 보단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쪽으로 아이를 지도하는 것이 그 비결.

서울신천동 삼성어린이박물관의 토요미술학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어린이미술관 같은 주말 미술학교나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 의 미술반 '그림터' 같은 곳에서도 이런 체험식 미술교육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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