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李총재 회견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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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는 내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권의 지난 1년 국정을 평가하고 야당의 입장과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취임 1주년에 즈음해 여러 행사에서 金대통령의 목소리만 크게 울린데다 현재의 난국에서 야당의 대안이 궁금하다는 점에서 국민은 李총재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야당은 존립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어 왔다. 여소야대가 뒤집어지고 소속 의원들에 대한 줄기찬 사정 (司正) 이 이어지고 총풍 (銃風) 등의 공세에도 시달렸다. 여야대화는 경색되고 여당은 국회를 강행했다.

그러나 이런 야당의 시련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한나라당에 대해 미흡함과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 1차적 책임은 한나라당 스스로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보기에 우선 한나라당은 야당이 뭔지, 어떤 야당을 지향하는지 정체성이 모호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여당에 대한 협력과 견제의 원칙과 기준이 보이지 않았고, 국가이익과 당리당략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자주 있었다. 이제 1년간의 그런 방황과 시련을 겪은 만큼 야당도 뚜렷한 자기중심을 세우고 시대가 요구하는 야당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당당한 야당' 이 돼야 한다고 본다. 과거 살벌한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한국의 야당은 만성적인 재정 빈곤, 내부 싸움, 구성원 이탈 같은 시련을 견디며 굳건히 버텨 왔다. 그런 야당의 모습은 항상 일정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왔다. 야당의 1차적 동반자요 후원자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1년 한나라당은 그런 떳떳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같다.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며 민생에 접근하는 야당의 활로를 찾으면 국민부터가 야당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권력도 야당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못하니 한나라당이 자꾸 권력에 대해 "야당을 인정해달라" 고 아쉬워하는 모양새로 비친 면이 많은 것이다.

李총재의 회견은 자성 (自省) 과 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 호소력있는 민생정책 등을 담아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이나 실업대책의 문제점, 춘투 (春鬪) , 국정난맥상 같은 문제에 대해 대안이 나와야 한다.

한나라당은 그의 회견을 생중계하는 문제를 놓고 방송사들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 역시 어느 정도 여야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보지만 설사 생중계가 되지 않더라도 李총재의 논리와 구상이 국민의 마음에 와닿으면 국민은 중계여부와 상관없이 회견을 기억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보다 당당해야 한다고 우리가 주문하는 뜻이 이런 점에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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