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족공동체·통일 진지하게 생각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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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89년 9월 11일 노태우 정부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했다. 민주화 20년과 한반도 통일 논의 20년은 역사적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2일 오전 ‘전환기에 선 한반도, 통일과 평화의 새로운 모색’ 심포지엄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화해상생마당(운영위원장 윤여준)이 주최하고, 한반도선진화재단·세교연구소·평화재단이 후원하는 행사다. 한반도 통일론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의 대표적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주요 발표문을 소개한다.

기조 강연 맡은 이홍구 전 총리
“MB·김정일 큰 결심해야”

◆다시 통일을 생각한다
=이홍구(75) 전 국무총리는 심포지엄의 기조 발표를 맡았다. 사전 배포된 발제문에서 그는 "민족공동체와 통일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1989년을 세계사적 전환기로 규정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서 냉전이 막을 내리는 시점이다. 동시에 냉전 체제 하의 한반도도 통일론의 극적인 전환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남북 2개 국가체제의 공존 방안이 수용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 때 발표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세계사적 의의를 재평가하고, 한반도 통일전략의 구체적 플랜으로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이를 위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이후의 남북 선언을 하나의 지속된 흐름으로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남북공동선언, 10·4공동선언을 예외없이 수용하고 재확인해야 통일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탈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한·러, 한·중 수교가 이뤄졌듯 20여년 뒤인 지금 북·미, 북·일 수교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포용정책 2.0’ 제안한 백낙청 교수
“햇볕정책 업데이트하자”

◆포용정책 2.0
=진보 학계 원로 백낙청(71)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단순 회귀하는 것만으로는 남북관계를 풀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획기적으로 업데이트된 ‘포용정책 2.0’을 제안한다. ‘햇볕정책’이 결국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냉정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6·15공동선언은 대북 교류·협력·지원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백 교수는 햇볕정책이 ‘대북 퍼주기’라는 보수 진영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상적인 무역거래 대금까지 ‘퍼주기’에 포함시키는 등 과장과 왜곡이 많다는 것이다. 다소의 문제점은 있지만 6·15선언으로 결실을 맺은 대북 포용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견해다.

‘포용정책 2.0’은 백 교수의 지론인 ‘시민 참여형 통일론’이기도 하다. 그는 분단의 고착화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이 남북한 모두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남북한 당국자들의 대화만으로는 안 되며, 기업을 포함한 남한의 민간사회가 남북관계 발전의 ‘제3의 당사자’로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백 교수는 “포용정책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이 국정을 주무를 수 없도록 국내 정치 사업이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선진화 포용통일론’ 내세운 박세일 이사장
“대북정책 국민 동의 필요”

◆선진화 포용통일론
=박세일(61)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30여 년 간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대북 정책만 있었지 통일 정책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대북 정책은 분단의 돌파가 아니라 분단의 유지가 주된 관심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회피하는 정책을 펴 국민적 통일의지가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평화적 남북관계’를 주장해온 세력이 결국 분단을 고착화하는 정책을 펼쳤을 뿐이라는 시각이다. 박 이사장은 또 “대북 정책이 국민적 동의 과정 없이 대통령의 이념과 소신에 따라 좌우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야 합의와 국민적 동의를 거쳤던 1989년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며 “이를 복원하고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체적 실천과 통일의지가 따르지 않았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반쪽’에 불과하다. 박 이사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 4강에 대한 적극적 통일외교가 필요하며, 대북 정책도 당국자 정책뿐 아니라 북한 동포에 대한 직접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관 합동의 ‘선진화 통일 추진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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