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신예바둑계 반상 혼전 예측불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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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신예강자들의 세계에 이상기류가 흐르고있다. '포스트 이창호' 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 선두경쟁을 벌이고있던 유명한 신인들이 속속 덜미를 잡히고, 대신 어둠속에서 새로운 강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활약한 신인중에서도 이성재5단 (22) 과 목진석4단 (19) 은 정상권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무서운 힘을 과시했다. 세계무대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최고수들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펼쳤다. 이세돌2단도 어린 나이 (16세) 와 세계대회 본선에까지 진출하는 출중한 실력으로 차세대 유망주로 손꼽혔다.

바둑계는 3강 (이창호9단 조훈현9단 유창혁9단) 을 꺾는다는 신인세계의 오랜 꿈이 이 세사람과 이미 신인 티를 벗은 최명훈6단의 합공에 의해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젊은 이창호는 몰라도 조훈현 유창혁이 이들에게 꺾이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99년의 시작과 더불어 펼쳐지고 있는 양상은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성재5단은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김명완4단에게 패해 패자조로 밀려나더니 복병 안달훈3단에게 져 아예 탈락하고 말았다. 지난해 신예10걸전에서 우승했고 세계8강으로 위세를 과시했던 이성재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패였다.

목진석4단은 이창호9단에 대한 99년도의 첫 도전자 (기성전) 로 나서는 바람에 바둑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0대2 완패. 지난해 신인왕전에서 우승했고 중국의 1인자 창하오 (常昊) 8단을 꺾어 기염을 토했던 목4단인지라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목4단은 이 도전기 직전에 열린 신인왕전에서 김승준6단에게 불계패했다. 이후 패자전에서 권오민2단을 꺾으며 회생을 노리고 있으나 올해의 전적은 1승3패. 지난해 다승왕치고는 최악의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이세돌2단은 왕위전 본선리그에서 조훈현9단과 첫 대국을 치르는 바람에 올해 신구대결의 상징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결과는 흑으로 불계패. 이어 벌어진 신인왕전에서도 김만수3단에게 패배해 승단대회를 제외한 공식전에서 2전2패를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망주들이 유명세를 치르는 사이 안조영5단 (20) 이 새강자로 명함을 내밀었다. 김만수3단 (22) 도 새롭게 각광을 받으며 강자의 대열에 들어섰다. 숨은 실력자 안조영5단은 지난해 세계대회 본선에 2번이나 진출하여 연말 바둑문화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인물이지만 발군의 업적을 보인 일이 없어 상대적으로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다.

안5단은 그러나 지난 12일에 벌어진 스피드011배 최고위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조훈현9단이란 대어를 낚으며 당당히 도전권을 쟁취했다. 정상을 향한 신예들의 선두경쟁에서 안5단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계산능력에 관한한 이창호와 필적한다는 김만수3단 역시 성적은 꾸준하면서도 화려하게 두각을 나타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김3단은 이번 신인왕전에서 안달훈3단과 이세돌2단등을 연파하며 오랜만에 결승전에 올라 김명완4단과의 대결을 앞두고있다.

최명훈6단이 이창호9단과 치른 몇번의 도전기 끝에 주춤하고 있듯이 이성재 목진석도 이창호의 쓴맛을 본 뒤 바둑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사이 또다른 얼굴들이 나서는 것, 이것은 이변이라기보다는 밀림을 닮은 승부세계의 자연스런 모습일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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