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아침]하종오 '허공의 장난'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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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벽이면 서리가 내린다

가랑잎이 두고 온 우듬지를 끌어당기려고 들썩이고

깊이 사방팔방에서 뿌리들을 움직인다

내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어떤 경계가 어떤 경지를 넘나든다

새벽이면 얼굴이 떠오른다

죽은 자는 아직 분노를 못 버리고

산 자는 다시 또 배반을 한다

내 머리를 쳐들어도 닿을 곳 없고

별은 허공을 만들어놓고 없어진다

- 하종오 (河鍾五.45) '허공의 장난' 중

하종오가 벌써 40대 중반이란 말인가.

세월이 외설스럽다.

저 70년대가 저물어갈 때 그는 시대의 생생한 우울이었다.

어둠에의 나신이기도 했고 이것과 저것의 화해와 함께 쌓여가는 공동을 지향하기도 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갠 날 동물의 본능이 있다.

양식 (良識) 이나 이성적인 사고 말고 즉각 먼데까지 점치는 이기적인 예감이 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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