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건청 '석탄 형성에 관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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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큰 나무와 짐승들이 땅에 묻히고

엄청난 지층의 무게에 눌려

모든 유기물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엔 석탄이 되었다.

나는 1998년 3월 거기에 갔다.

그리고 3월 16일,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

垂坑으로 825m를 하강한 후

다시 人車를 타고 3200m지하

3억년 숲과 짐승들이

현생 인류와 다시 만나는 현장에 닿았다.

거기가 막장이었다.

- 이건청 (李健淸.37) '석탄 형성에 관한 관찰기록' 중

굳이 섬섬옥수의 시일 까닭이 없다.

이건청의 내밀한 의지가 괜히 흔하디 흔한 서정을 박차고 나서더니 거기 지하 4천m 지층의 석탄 원탄 (原炭) 과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감회도 내보이지 않는다.

묵묵부답이다.

그 자신이 어둠 속의 원탄이 되어 함께 지열로 달구어진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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