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44.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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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7장 노래와 덫

배에서 내린 어부의 복장 그대로인 사내는 술청 모퉁이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겐 눈길조차 건네는 법이 없었다. 먼산바라기하듯 충혈된 시선을 천장에다 두고 술청을 가로질러 방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간 뒤로는 아내에게 허튼소리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었다.

봉환은 물론 사내의 달갑지 않은 행동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짐작하고 있었다. 사내가 방으로 들어간 뒤 사이를 두었다가 안주인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노름판에서 몽땅 털리고 돌아왔다는 것을 아내 역시 익히 짐작하고 있음이었다. 십여분이 지났다. 나지막하긴 하였으나 안주인의 볼멘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남편은 필경 아내에게 판돈을 짓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현금이 나도는 곳에는 은밀한 도박이 성행하게 마련이었다. 남자의 한숨 쉬는 소리가 술청에까지 뚜렷했고, 다시 푸념을 터뜨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크게 들려왔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봉환은 허공에 대고 안주인을 불렀다. 대답은 금방이었으나 안주인은 잽싸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상기된 얼굴로 나타난 안주인에게 봉환은 대뜸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슴없이 자신도 얼마 전까지는 내로라했던 꾼이었다고 거짓 자백까지 늘어놓았다. 노골적으로 노름판을 역성들고 있는 봉환의 태도에 솔깃해진 사내는 술청으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엔 봉환이처럼 다부지게 생긴 사내에게 봉환은 다짜고짜 판이 아직 식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의 태도가 단도직입적인 것에 사내는 다소 기가 질린 것 같았다. 주저하던 끝에 옆자리로 끼어들었다.

그러나 봉환은 노름판의 얘기를 길게 늘어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새우 거래를 트자는 수작도 없었다. 새우 안주를 더 시켜 식탁을 그럴 듯하게 벌인 다음, 소주를 권하면서 허튼소리로 일관했다.

사내의 됨됨이를 관찰하자는 속셈이었다. 남편의 소행을 만류하다 못해 이젠 거리를 두고 그럭저럭 용납하는 입장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나중에 동석한 아내의 푸념으로 알게 되었다.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게 노름판의 오랜 풍속이고, 대처로 몰려나가 계집질로 흥청망청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큰 화근을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식당경영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여긴다고 아내는 자위하고 있었다.

이토록 좁은 포구에는 선상노역에 시달린 긴장을 풀어줄 장소란 마땅하지 않았고, 건전한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설 따위도 없었기 때문에 손쉬운 화투패를 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얻은 병이라고 아내는 남편을 역성까지 들고 있었다.

봉환이가 그에게 백만원 다발을 아무런 생색도 않고 불쑥 건네준 것은 좌석을 같이한 뒤 한 시간 정도 흘러간 뒤였다. 조건 따위는 물론 차용증조차 쓰지 않았다. 놀란 사내는 당장 사양했다.

그러나 그 사양도 건성이란 것을 봉환이가 모를 리 없었다. 그가 아무리 사양을 한다 해도 집으로 돌아온 것은 고깃덩어리일 뿐 마음은 필경 노름판에 그냥 두고 왔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돈 다발을 낚아챈 남편은 어느새 문 밖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평생에 그날 밤만큼 왕새우를 포식했던 날은 처음이었다. 화장실로 뛰어가면 배꼽에서 산 새우가 그대로 튀어나올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 아내가 아예 식당문을 안으로 닫아 걸고, 날새우를 식탁으로 날라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닷가에서의 음주는 공기가 축축하지만, 뭍에서처럼 야박스럽게 취하지도 않았다. 뼛속으로 눅진하게 그렇게 취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깊숙한 취기도 바닷바람이 씻어가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게 마련이었다. 아침에 잠이 깨었을 때, 두 사람은 식탁 아래에서 그대로 꼬꾸라져 잠든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내가 덮어준 이불자락은 가랑이 사이에 뭉쳐진 채로 끼여 있었다. 하직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식당을 나와 그대로 대전으로 달렸다. 안주인이 보기에는 바람 같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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