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보좌관 도입 배경]법관 일손덜기 고육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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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법원이 12일 발표한 사법보좌관제 도입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일선 판사들의 재판업무를 줄이려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판사의 업무과중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98년 10월까지 재판에 회부된 민사소송 건수는 76만여건으로 97년에 비해 43.2%나 늘었다.

97년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14.6%.87~96년의 전년대비 평균증가율은 6.4%로 판사 충원이 사건증가 추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사건당 재판시간은 불과 3~4분이다.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한국의 법관 1인당 국민수는 미국의 네배나 된다.

사건수로 보더라도 인구가 우리보다 세배 이상인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94년부터 이 제도를 검토해왔으며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를 맞아 소송이 더욱 폭증하자 수뇌부가 전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제도의 골자는 굳이 판사가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될만한 사안들을 사법보좌관들에게 맡기는 대신 판사들은 고도의 법률적 쟁점을 가진 사건심리에 집중하게 하자는 것. 대법원은 이를 통해 사법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법보좌관법 시안은 판사들이 처리했던 업무중 판결이나 형벌권 행사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 기계적일 정도로 단순하거나 당사자간 분쟁이 없는 업무에 한해 위임했다.

법관들 사이에서 "이혼 주례서러 간다" 고 불리는 협의이혼 의사확인절차나 제소전 화해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법원 일반직원은 재판보조업무 담당자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준판사' 급으로 격상돼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취지는 이해하면서도 운용현실에서 나타날 문제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우선 헌법에 보장돼 있는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 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관이 모자란다면 법관을 늘려야 하는 것이 정도 아니냐" 는 논리로 당장 국회 입법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이 점을 고려해 사법보좌관이 내린 모든 처분에 대해 불복절차를 마련, 판사가 판단할 수 있게 규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불리한 결정이 날 경우 반드시 불복절차로 이어져 옥상옥 (屋上屋) 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비록 간단한 업무라 해도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연수 등을 통해 고도의 법률교육을 받은 법관들의 업무를 일반공무원에게 넘기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김정욱.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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