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85년 AIDS 감염 4,200명 '수혈사고' 14년만에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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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에이즈 (후천성면역결핍증) 확산 초기였던 지난 80년대 초반 프랑스에선 4천2백명이 어처구니없이 수혈 도중 에이즈에 감염됐다.

그중 1천3백48명은 수혈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혈우병 환자였고 이들중 6백25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의 이른바 '혈액 스캔들' 이다.

문제의 85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정을 책임졌던 인사들의 정책 잘못을 가리기 위한 역사적 특별법정이 9일 프랑스에서 개정됐다.

피고인들은 당시 총리였던 로랑 파비우스, 사회장관 조르지나 뒤푸아.보건장관 에드몽 에르베 등 3명. 파비우스 전총리는 현재 하원의장이다.

이들은 공무상 과실치사혐의로 상.하원 의원 각각 6명과 대법원 판사 3명으로 구성된 공화국 법정에 출두했다.

공화국 법정은 정부 각료의 재임중 직무와 관련한 비리를 심판하기 위해 지난 93년 처음 만들어진 헌법상 특별기관이다.

프랑스에서 국정 최고책임자가 형사소추를 당해 법정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 재판은 프랑스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총리로서 충분히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최소한 3명의 불필요한 희생자를 발생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파비우스의 혐의사실이 입증될 경우 그는 3년 이상의 실형에 처해질 전망이다.

당시 이미 에이즈의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특히 재소자에 주로 의존하는 프랑스 헌혈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도 정부가 문제를 방관함으로써 참사를 자초했다는 것이 희생자 단체들의 주장이다.

정부가 늑장 대응한 배경에는 효과적인 혈액시험제가 미국에서 이미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국산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탓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재판은 프랑스 엘리트 관료의 편협한 국수주의에 대한 심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 애버트사가 개발한 제품의 신뢰성이 입증됐고 가격도 프랑스 제품의 예상가격보다 싸기 때문에 신속히 구매, 혈액검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내부 건의가 나온 것이 85년 4월이었지만 당시 프랑스 총리실과 관계부처는 연간 2억프랑 (약 4백20억원)에 달하는 프랑스 혈액검사시장을 미국에 완전히 내줄 수는 없는 게 아니냐는 상부의견에 따라 결정을 유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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