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힐컵 축구] 베트남 '한국형 축구'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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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뛰는 모습은 70~80년대 초 한국대표팀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위 아래 붉은색 유니폼에 작달막한 체구, 쉴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투지와 부지런함이 그렇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당시 4강신화를 이룩한 박종환사단을 쏙 빼닮은 모습이다.

당시 한국팀은 쇼트패스를 중심으로 톱니바퀴같은 조직력과 선수 전원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벌떼축구' 를 앞세워 준결승에 올라 브라질과도 접전을 펼친 끝에 1 - 2로 역전패했다.

베트남은 이번에 '던힐컵 4강 신화' 를 창조했다. 베트남 대표팀은 빠른 몸놀림과 정교한 쇼트패스로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했으며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발휘, 러시아 올림픽대표팀을 1 - 0으로 꺾은 데 이어 아시아 챔피언 이란과도 2 - 2 무승부를 기록했다.

베트남이 조1위로 준결승에 진출한 5일 호치민 시내는 마치 베트남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처럼 광란의 도가니였다.

베트남 축구의 현재는 한국 축구의 20여년전 모습이다. 형이 입던 교복을 동생이 물려받듯 베트남은 한국의 '투지와 기동력' 이라는 특징을 물려받았고 이를 무기로 '탈 동남아' 를 외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국적의 알프레드 리들 감독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베트남 축구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 여기에 정교한 전술과 힘을 보태야 한다" 고 방향을 제시했다.

광적일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 베트남. 한국을 모델삼아 차근차근 축구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있고 뿌듯한 일이다.

한편 이란은 준결승에서 한국에 0 - 2로 패하자 독일 출신 에곤 코르데스 감독을 경질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치민 =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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