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법관인사제도 개선책 요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문흥수 (文興洙)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공개적인 사법제도 비판 이후 법관 인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판사의 관료화' 현상에 대한 文부장의 지적에 판사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승진 및 재임명제도가 관료화 현상을 부추기는 두 축이라는 견해가 많다.

文부장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 에서 "발탁 승진이 이뤄지는 고등법원 부장.대법관 승진 구조하에서 인사권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으며, 10년에 한번씩 재임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신있게 '튀는 판결' 을 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는 현재 80명. 그러나 한 기수에서 10명도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승진 탈락자는 자동 승진 대상인 지법 부장으로 만족하지 않는 한 옷을 벗는 것이 관례다.

현재 사직을 거부하고 지방부장으로 근무하는 판사는 서울지법 본원 및 산하 5개 지원을 통틀어 8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판사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구조적으로 승진에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 판례에 반대되는 과감한 판결을 위해선 법관의 신분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 고 지적한다.

특히 재임명제도가 조직정화를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법원내 반발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文부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판사임용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까지 지적해 파문이 일고 있다.

文부장은 "법관들이 숙명적으로 변호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법원을 '거물 변호사 양성소' 로 만들고 있다" 고 주장했다.

'종신 법관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셈이다.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선 판사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사들은 충분한 예우에 앞서 어떤 형식으로든 판사자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서울고법 황정근 (黃貞根) 판사는 "법관 정년이 없는 미국의 경우나 변호사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 일본 법관처럼 대우가 개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 판사 자격을 엄격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 며 "그러나 일단 판사가 된 후에는 직위의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고 강조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없지 않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신법관 체제는 조직의 정체성을 가져올 수 있으며, 업무의 효율성도 현저히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모든 개혁을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즉 국민들이 양질의 사법 서비스를 위해 판사들의 높은 월급 등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도 좋다는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