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문서관리 체계화작업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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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신임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으로부터 업무를 인계받을 때 청와대의 서류캐비넷에는 통치관련 자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정부의 공공연한 관행이다.

통치관련 문서 등 국가적 기록을 사 (私) 문서화해 퇴임과 함께 파기하거나 개인적으로 보관되는 등 국가적 관리를 벗어나 있는 게 현실이다. 사건 사고에 관한 청문회에서 증거자료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도 공공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도 청와대 서류함은 텅 비어있었다. 역대 대통령마다 각기 문서관을 갖고 일기류는 물론 하찮은 메모까지 보관하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추어 매우 낯뜨거운 실정이다.

지난 29일 공포, 2000년부터 시행될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본지 1월30일자 31면)에 따라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개선될 계기를 맞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 법률에는 공공기록 생산 강제조항이 있어, 고위정책자의 메모와 주요 정책 담당자들은 회의록 및 면담록을 반드시 남기도록 돼있다.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은 나오지 않았지만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은 임기 종료 6개월 전에 관련문서를 중앙관리기관에 이관해야 한다. 또 공공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외국으로 유출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학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역사자료.해외자료 수집 등 정부기록보존소의 업무와의 중복 부분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것. 새 법률에 따르면 기본 정책 및 전문관리기관 간의 협력등을 심의하기 위해 '국가기록물관리위원회' 를 설치하게 돼 있다.

이로써 정부의 각종 공공문서가 하나로 통합 관리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셈이다. 정부 관련 공공문서의 관리의 일원화를 주장했던 학계와 시민단체들도 이같은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주력할 사업으로는 법률이 정한대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공공문서 보존소를 설립 운영토록 하고, 학계.시민단체와 연계, 조례 규정 등에 적극 나서는 일이다.

이같은 정부 활동과 함께 지난달 30일 국가기록연구원의 사단법인 출범 등 민간 쪽에서도 국가기록 관리를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등 공공 기록의 생산과 올바른 관리에 대한 관심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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