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竹篇(죽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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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정춘(1943~ ) '竹篇(죽편)' 전문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대숲이 창창한 마을에서 죽마(竹馬)를 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푸른 기차'란 그 대막대기가 아닐까. 칸칸은 그 옹이 진 마디일 테고. 그런 고향을 떠나온 지도 어언 반백년이다. 대막대기를 몇이서 가랑이 사이로 끼워넣고 '칙칙폭폭'하며 마을을 돌았던 석이.돌이.갑이 등 그 깨벗기 친구(발가벗고 놀았던 어린 시절 친구)들은 대처에 나가 살기에 어쩌다 명절 때 고향에 가서 한번씩 만나곤 한다. '여기서부터 멀다'는 고향에 가는 일이 기차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일보다 더 멀지도 모른다. 대막대기를 타고 놀았던 그 시절의 여행은 얼마나 유쾌한 여행이었던가.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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