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잦은 대사면 문제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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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3.1절을 앞두고 국민회의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에게 민심수습 차원의 대대적인 사면.복권을 건의키로 했다.

국민회의 측은 "국민 대화합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야당의 지역감정 선동에 따른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대사면 조치가 필요하다" 고 설명하고 있다.

국민회의가 발표한 건의안은 국가보안법 위반자와 장기수의 준법서약을 전제로 한 석방과 선거사범 등 정치사안 관련자의 사면.복권이 주요 내용이다.

또 현정부 출범 이후 노동운동 등 노동사건 관련 구속자와 구정권 아래서의 집시법 위반자를 석방하고 구정권 하의 수배자는 수배해제하며 미복권자는 대대적으로 복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없는 경제난을 맞아 각계각층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을 모아야 되는 시기에 국민 대화합이란 명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현실적으로도 기업체의 잇따른 도산으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근로조건이 훨씬 열악해지면서 특히 노동계가 몸살을 심하게 앓고 고통과 갈등을 겪었기에 이들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이 여러차례 거론돼 왔다.

그러나 사면.복권은 사법 판결의 효력을 소멸시켜 법의 안정성을 해치게 되므로 법치국가로서는 일종의 극약 처방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국민 정서와 어긋나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자주 있어서도 안된다.

아울러 그 범위도 가급적 축소시키고 대상자 선별도 신중해야 한다.

특히 국민회의가 사면.복권 대상에 선거사범을 포함시킨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 정권에서 야당 탄압으로 불공정한 수사를 받아 당시 야당 인사들이 억울하게 포함된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도 약하고 국민 대화합이란 명분과도 맞지 않는다.

부정과 불법이 난무하는 선거를 겪을 때마다 올바른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선거사범만은 엄단해야 한다는 게 국민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선거사범으로 피선거권을 상실했으면 적어도 한번쯤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는 불이익은 겪도록 하는 것이 법의 존재 가치나 사회 정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뇌물 사범을 쉽게 사면하면 안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공직자 비리는 이제 반국가적 범죄로 인식돼야 한다.

오죽했으면 제2건국위에서 뇌물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토록 제도화하자는 의견이 나왔겠는가.

또 미전향 장기수나 이른바 양심수 사면도 신중해야 한다.

준법서약서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광복절 특사때 준법서약을 하고 풀려난 사람들이 곧바로 준법서약 제도 자체를 부정.비난한 적도 있었다.

올해 3.1절 대사면을 한다면 새 정부 들어 1년 사이에 세번 하는 셈이다.

金대통령 취임 경축 3.13 특사와 8.15 특사가 대규모로 있었으니 6개월에 한번 꼴이다.

너무 잦은 대사면이 법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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