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달라졌다] 4.사라진 평생직장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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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경련이 최근 서울의 남자 직장인 7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명중 1명 (47.5%) 이 '현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는 응답이 나왔다. '정년퇴직 할 수 있을 것' 이란 응답은 12.9%에 불과했다.

이런 사례도 있다. 국민투자신탁이 인턴사원 64명으로부터 희망 부서를 받아보니 과반수 (37명)가 영업부서를 지원했다. 1년여 전만 해도 지원자가 몰려 경합이 치열했던 자금이나 조사업무 희망자는 6명에 불과했다. 직장 그리고 업무에 대한 직장인들의 의식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예다.

컴퓨터 보안 관련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원 (39) 씨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리스회사의 잘 나가는 중견 사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2월 14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그동안 주특기를 닦지 않은 게 후회된다" 고 말했다.

지난해 명예.희망.조기 퇴직자는 약 22만명 (전경련 추산). 지난해 일자리를 잃은 1백26만명 (통계청)가운데 5명당 1명은 명퇴란 이름으로 '정년' 의 꿈을 접은 것이다.

이렇듯 '평생 직장' 의 꿈이 깨지면서 특정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춰 '평생 직업' 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지면서 생활패턴과 근무 행태도 달라졌다.

회사내 부서 선호도도 빠르게 달라졌다. 국민투신 이우철 인사팀장은 "일반관리직보다는 전문성을 쌓거나 재취업.독립의 기회가 많은 영업직에서 뛰고 싶어한다" 고 말했다.

고려포리머 김태근사장은 "인사 때면 영업쪽으로 보내 달라는 직원들이 줄을 선다" 며 "영업쪽이 감원 부담이 적은 데다 안면과 경험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외국계 보험회사에 스카웃된 윤진수차장 (34) 은 "영업이 힘들긴 하지만 나중에 내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며 열심히 뛰고 있다" 고 말했다.

자영업으로 전환하기 쉬운 전산직이나 정보통신영역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자 회사 입장에선 고민도 적지 않다.

D그룹 관계자는 "애사심.소속감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 면서 "취업 사정이 나아지면 능력있는 직원들이 조그만 이해관계에도 쉽게 직장을 옮기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까 걱정" 이라고 말했다.

실적에 잡히지 않는 잡일 등엔 가급적 빠지려는 이기주의.자기중심주의적 행태도 전에다 훨씬 강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원상희 (元相喜) 실장은 "전엔 회식자리 사회를 본다든지 회사 비공식행사 등에서 잘 어울리는 사람이 평가를 받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 없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팽배하고 있다" 며 "사원들이 평가에만 집착, 회사 소속감이나 업무 몰입정도가 떨어지는 데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김동섭.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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