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작가6명 밤새우며 털어놓은 글쓰기 자아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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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혹자는 90년대 소설가들을 '소음을 만들 줄 모르는 자들' 이라고 싸잡은 바 있지만, 여섯 명의 작가가 모인 밤은 길고도 소란스러웠다.

계간 '문예중앙' 이 마련한 밤샘 방담이 박상우씨의 사회로 진행중인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에 밤깊어 들이닥쳤을 때, 때마침 도마 위에 오른 것은 90년대 작가의 자기 반성.

"왜 반성해야 하냐" 는 반문에서 "멋있는 소설가/많고 많지만/나야말로 진짜 소설가" 하는 군가풍 답변까지, 이네들의 반 (反) 심각주의 기질 속에도 하나의 소실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가인가를 의심하면서도, 나를 믿어왔다" 는 이응준씨의 말과 "지금 쓰는 게 소설인지 아닌 지, 생각이 많았다" 는 하성란씨의 말은 소설가로서의 자의식과 싸우고 있는 90년대 작가들의 속내를 드러냈다.

"창작집을 참 얇게 묶어내곤 했어요. (다른 이들, "출판사에서 내자고 하면 그냥 냈군요?" ) 소설가로서의 내 경영방법이 아주 없었단 거죠. 소설을 쓰면서도 너무나 의식없이, 생각없이 썼다는 것을 즐겼던 것 같아요. '심야통신' 묶고 몇 달이 지나자 부끄러웠어요, 아무 생각없이 썼다는 게. 실은 내가 이런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기 힘들어요. " 배수아씨 특유의 솔직한 발언을 "나같은 소설가가 한명쯤 있어도 좋다" 는 은희경씨가 받았다.

"내 삶의 상투성이 넌더리가 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 삶이 나한테는 엄숙하고 무거웠죠. 심각한 것일수록 우습게 보고, 어두운 것일수록 옆눈으로 보려고 하는 건 그래서에요. 내 소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부끄럽다고는 생각안해요. 감히 말하건대 시대적 대표성이 있다고 봐요. 나는 대통령 바뀌면 큰일나는 줄 알고, 김일성 죽으면 남북통일 되는 줄 알고 살아온 세대에요. 그런 억압받은 걸 억압받았다고 쓰니까 시원하게 여긴 거겠죠. "

"고정독자 2만이면 작가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데 아직 거기 못미친다" 는 알듯말듯한 반성을 내놓은 김영하씨가 덧붙인다. "TV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어요. 너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의사'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냐고.어, 나도 그런데. " '90년대 작가' 에 대한 의혹은 '작가' 가 아니라 '90년대' 의 탓인지도 모른다.

화제가 '소설' 의 운명으로 넘어가자 가장 젊은 이응준씨부터 보수적인 자세를 취한다. "사이버 문학? PC통신문학? 소설이란 암만 기묘해도 인간의 이야기 아닌가요? 들꽃이 주인공이든, 인조인간 로보트가 주인공이든. " '새로움' 에 대한 호들갑이 싫기는 젊을수록 더한 모양. 김영하씨의 말이 이어진다.

"21세기? 1월1일 눈떠보세요. 철가방은 여전히 자장면 배달하고, 저는 여전히 글을 쓸 겁니다.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거봐, 이럴 줄 알았어" 하겠죠. " 90년대 대표작가들의 '자아비판형' 방담 전문은 2월말 나올 '문예중앙' 봄호에 실릴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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