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탈IMF '베이비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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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증기기관차가 날카로운 기적을 울리며 달리던 시절 "철로변에 사는 부부들은 자녀가 많다" 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밤중에 기적소리에 깨어난 부부가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되면 섹스밖에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하지만 한밤중에 많은 부부들이 잠들지 못한 탓에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진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1977년7월 13일 오후 9시34분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이 갑자기 암흑 속에 휩싸였다.

뉴욕 교외의 핵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져 정전이 된 것이다.

12시간이나 계속된 이 정전사고로 뉴욕은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하는 일대 혼란이 야기됐다.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이 난무했고, 이를 막으려는 수많은 경찰관들이 부상했다.

선량한 시민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으나 사태가 너무 험악해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한데 그로부터 약 10개월 후인 78년 5월 뉴욕의 출산율이 갑자기 치솟았다.

모두가 정전때 수태 (受胎) 된 아기들이고 이들은 그후 '블랙아웃 베이비' 라 불린 것이다.

실제로 출산율은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전쟁이 그렇다.

전쟁이 끝나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로부터 약 10개월 후의 출산율은 어김없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베트남전쟁의 종전때 그랬다.

더 가까운 예도 있다.

92년 1월 초 미 국방부는 미군가족의 출산율이 갑자기 증가했으며, 특히 텍사스주와 켄터키주 등 미군기지 주변에서는 평소보다 무려 두배로 치솟았다는 이례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91년 1월 초에 발발한 걸프전에 50만명 이상의 미군이 참전했고, 이들이 3월 초부터 철수하기 시작했으므로 꼭 10개월 후의 상황인 것이다.

그때 태어난 아기들이 '걸프전 베이비' 로 불렸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난날과 달리 지금의 출산율은 무엇보다 나라 전체는 물론 개개인의 경제적인 형편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를 보여 왔는데 경제가 다소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는 듯한 새해에 접어들면서 산부인과 병원이 갑자기 호황을 보이고 있다 한다.

'탈 (脫) IMF 베이비 붐' 이라고나 할까. 몇십년후 이들이 사회의 주인공으로 부상했을 때 지금의 IMF사태를 어떻게 평가할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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