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은총재 호된 질책에 '실책'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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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철환 (全哲煥) 한국은행 총재가 넋을 잃었다.

20일 속개된 경제청문회의 증언대에서 全총재는 초반 "잘 모르겠다" 는 답변을 남발, 의원들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결국 全총재는 오후 들어 "구 (舊) 정권의 정책에 실책이 있었다" 고 순순히 인정하고 말았다.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全총재는 기아사태 관련 부도유예협약의 체결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부도유예협약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느냐" 는 국민회의 이윤수 (李允洙) 의원의 첫 질문부터 全총재는 얼어붙었다.

全총재는 "재경원이 만든 것" → "은행감독원이 만든 것" 으로 답변을 번복했다.

천정배 (千正培.국민회의) 의원이 "형식적으로는 기아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은감원이 만들었다는 뜻이냐" 고 추궁하자 全총재는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며 또 한발을 뺐다.

의원들은 "도대체 모르는 것을 왜 답변하느냐" 고 몰아세웠다.

全총재는 또 외환위기 대응과 관련, "당시 한은은 내부적으로 정책당국에 심각성을 제기했지만 대통령에게 직보하진 못했다" 며 "다른 견해를 가진 한은이 부총리나 수석을 배제하고 직보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움이 있다" 고 한계를 토로했다.

○…그러나 공식 답변순서에 돌입하면서 全총재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全총재는 "한은에도 환란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며 한은의 책임을 순순히 시인하는가 하면 "문민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없었다는 데 동의하느냐" 는 질문에 "그렇다" 고 대답하는 등 특위 의원들의 구미에 맞는 답변을 했다.

○…밤늦게 시작된 금융감독원의 보고에서 특위 의원들은 은감원 등 과거 감독기관의 부실감독을 강도높게 추궁. 그러나 IMF 이후 금융감독책임을 맡은 이헌재 (李憲宰) 금감위원장이 한보.기아 등 과거 사건에 대한 정확한 경위를 말할 입장이 아니었던 탓에 분위기는 고조되지 못했다.

○…97년 외환위기때 '정치논리' 에 매달리는 재경부의 정책실상을 보여주는 문건이 이날 공개됐다.

감사원이 이날 국회에 제출한 청문회 보고자료중 외환일지가 해당문건. 당시 재경부 외화자금과의 김정관 사무관이 쓴 일지는 97년 11월 17일에 작성됐다.

'환율이 오늘 1, 008.6원까지 상승한 이유' 에 대해 그는 '진짜 이유' 라며 "금융개혁과 관련해 외환시장 불안을 가중시켜 정치권을 압박하려는 강경식 부총리 등 (상사들) 의 생각. 실무자 입장에서 상관 명령에 복종함" 이라고 적었다.

姜부총리가 국회에 계류중인 금융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외환시장의 불안요인을 키우고 있다는 게 金사무관의 판단. 결국 당시 시장논리에 의해 환율이 상승했다는 재경부의 설명은 '거짓말' 이었다는 주장인 셈이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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