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대기업·고소득층 감세 혜택 줄여 재정적자 줄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윤증현 장관이 25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2009년 세제개편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세제개편안의 특징은 ‘증세’다. 정부는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여 앞으로 3년간 10조5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21조3000억원의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던 지난해 세제개편과는 정반대다. 통상 세제개편을 하면 세금을 깎아주거나, 늘리더라도 소폭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올 세제개편은 대규모 증세임에 틀림없다. 기획재정부 주영섭 조세정책관은 “세제개편을 통해 증세를 한 경우는 과거에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그간 정부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다. 그 결과 큰 고비는 넘기고 있지만 나라 곳간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해 15조6310억원이었던 재정적자가 올해 51조원으로 늘어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1.5%에서 5%로 늘게 됐다.

정부가 지난해 대규모 감세를 추진하면서 재정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금을 깎아주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쪽을 택했다. 그랬던 정부가 금융위기의 여파로 1년 만에 증세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 스스로 지난해 감세가 경제여건에 비해 과욕이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감세 기조가 MB노믹스의 근간이었던 만큼 정부도 고민이 많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경기 회복을 지원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하는, 상충되는 목적들을 한 틀에 넣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증세의 주요 대상은 고소득층과 대기업이다. 20년간 운영돼온 임시투자세액공제의 폐지로 대기업은 내년에만 1조5000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늘어나는 세금의 80~90%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부담이 되고, 나머지는 중산층과 서민·중소기업이 지게 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책의 무게 중심이 집권 초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친서민’으로 옮겨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도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2단계 인하를 예정대로 내년에 시행(소득세 최고세율 35→33%, 법인세 최고세율 22→20%)하기로 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감세 기조를 지속하는 것으로 봐달라는 입장이다.

세제개편은 모든 납세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당사자들의 이해가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서민은 서민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불만을 갖게 돼 있다.

정부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공모펀드와 파생상품에 대한 증권거래세 과세만 해도 금융위원회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국회 통과는 더 험로가 예상된다. 겉으로는 재정 건전성 회복을 외치지만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비과세·감면 축소에 선뜻 나서지 않는 곳이 정치권이다. 자동차운전학원이나 애완동물 진료에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면 학원비와 진료비 인상이 불가피하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는 봉급생활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안종범 교수는 “비과세·감면 항목을 정비하는 방향은 긍정적”이라며 “법인세 인하 등 현 정부의 감세 기조는 유지돼야 하며,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해서는 세금을 늘리기보다 세출을 줄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