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기도 쉽지 않지만 이를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 벤처기업의 수는 2007년 152개에서 지난해 202개로 늘었다. ‘매출 1000억원 클럽’에 신규 진입한 회사도 많지만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가 다시 주저앉은 회사도 30개 가까이 된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어려움이 닥쳤다. 주력 시장인 일반 유통시장(소비자 대상 직접판매 시장)에 유료 채널을 공짜로 볼 수 있게 해킹한 불법 상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매출·수익이 모두 줄었다. 2005년에는 매출이 480억원으로 곤두박질했고 손실이 100억원을 넘어섰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 사장은 ‘정도 경영’을 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지금도 전 직원(82명)의 절반인 42명이 연구개발 인력일 만큼 기술력은 자신 있었던 이 사장은 “당장의 매출보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매출을 올리기는 쉽지만 혼탁한 일반 유통시장에서 아예 손을 뗐다. 대신 진입이 어려워도 시장 규모가 훨씬 크고 안정적인 방송사업자 시장에 도전했다. 기술 장벽이 높기로 소문난 북유럽 시장과 상거래 관행·기술표준이 독특해 국내 업체가 기피하던 인도 시장을 목표로 삼았다.
노르웨이의 대표 사업자인 카날 디지털에 납품을 하는 데 꼬박 1년이 넘게 걸렸지만, 예상대로 이후에는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인도 시장도 현지 사정에 맞는 기술을 개발한 끝에 많은 거래처를 확보했고, 빠르게 성장하는 중남미에서도 입지를 넓혔다. 매출도 자연스레 2007년 1000억원, 지난해에는 15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영업 전략뿐 아니라 회사 운영에도 원칙을 지켰다. 연구개발에 전력을 쏟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에 대한 결제도 전액 현금으로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대신 다른 분야에서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회사에는 사장실을 따로 두지 않고, 거래처에 술 접대도 하지 않는다. 재고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산은 철저하게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 사장은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벤처기업은 위기 때 당황하기 쉽지만 시장은 반드시 되살아나게 마련”이라며 “오히려 어려울 때 기술 개발과 우수 거래처 확보 등 정도를 걸으면 반드시 큰 과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