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거짓말 두둔 프랑스 풍토 통렬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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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치인의 거짓말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최근 탄핵사태로까지 번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보면서 프랑스인들이 던지는 자문 (自問) 이다.

그동안 클린턴 탄핵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한마디로 "한심하다" 는 것이다.

"정치인들이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 는 얘기다.

실제로 프랑스 언론들은 클린턴 탄핵재판을 두고 '슬픈 쇼' 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미국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고 통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치판의 거짓말을 일종의 규범으로 여기고, 심지어 고상한 문화라고까지 생각하는 프랑스인들, 특히 프랑스 엘리트집단의 사고방식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최근 거짓말에 관대한 프랑스의 풍토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 티에리 피스터의 '거짓말 수호자들에 대한 공개서한' 을 소개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총리대변인을 지낸 그는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대통령의 발암사실에 대한 허위진단서나 사후에 밝혀진 2중생활조차 문제삼지 않을 정도로 거짓말에 대해 너그럽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라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인데도 프랑스에서는 전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프랑스의 거짓말 정치문화는 라틴적인 특성이나 과거 프랑스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피스터는 그러나 거짓말 풍토는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클린턴 탄핵에 대한 프랑스 엘리트층의 의도적인 비아냥에는 머지않아 프랑스에도 밀려들 '진실 요구' 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피스터는 클린턴의 성추문에 대한 미국식 해결방안이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지만 민주사회에서 공직자의 사생활 공개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책임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보면 결국 클린턴은 민주주의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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