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전문대학 교육협의회 정종택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의 극심한 구직난 사태는 대입 지원판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4년제 대학 원서 접수 결과 취업 전망이 밝은 학과와 그렇지 못한 학과간의 경쟁률이 크게 벌어졌다.

또 '직업 전문교육기관' 인 전문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며 지원자 증가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산업 기능인력의 양성을 위해 도입됐으나 학벌 중시의 벽에 막혀 4년제 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의 '비상구' 로 인식돼 왔던 전문대. 그러나 최근에는 실용적 교육 내용과 높은 취업률이 부각되면서 일반대 졸업자들이 역류하는 등 그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정종택 (鄭宗澤.64.충청대학장) 회장을 만나 전문대의 발전 방향과 그 방안을 들어봤다.

- 정.관계 인사들이 일반대학 총장에 취임한 예는 적지 않습니다만, 여러 부처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내신 거물이 전문대 학장을 맡으신 건 처음 아닙니까.

"예. 전문대 20년 역사상 장관 출신 학장은 제가 처음이라고 합디다. 사실 저도 4년제 대학 총장이 될 뻔했습니다만 제가 강력히 '저지' 했습니다. " (웃음)

- 무슨 말씀입니까.

"충청학원을 설립한 오범수 (吳範秀.97년 별세) 씨가 97년 4년제로 충청공대를 신설해 장관을 그만둔 저를 초대 총장으로 앉히려고 했어요. 그때 4년제 대학이 지금 얼마나 많이 널려 있는데 또 만드시려 하느냐고 제가 적극 말렸습니다.이름뿐인 4년제 대학보다 지역일꾼을 키우는 전문대가 훨씬 필요하다고 말했지요. "

- 내무관료 출신으로 교육분야와는 별 관련이 없던 분인데 교육정책에도 각별한 철학을 갖고 계신 것 같군요.

"그렇진 않아요. 다만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국가발전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할까요.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보십시오.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만 고등교육 제도만 하더라도 개선할 점이 많아요. 과거에 우리는 고등교육 대중화다 뭐다 해서 대학 늘리기에 급급했습니다. 2003년에 가면 고교 졸업생은 65만명, 대학 정원은 75만명쯤 된다고 합니다. 대학도 문을 닫는 곳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회가 필요한 인력구조를 생각해 고등교육체계를 재정비할 때입니다. "

- 그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문직업훈련이 강화돼야 합니다. 왜 모두 4년제 대학에 가야 합니까. 스위스의 경우 국민의 10%만이 일반대학의 학문중심 교육을 받고 나머지는 직업교육 중심으로 움직이는 복선형 교육제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소수의 우수한 두뇌들이 학문적 이론과 고급기술 개발을 맡고 그 밑에 다수의 전문 기술.기능인력이 배치된 피라미드식 인력구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너도나도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낭비적이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IMF 이후에도 산업현장에서는 구인난이요, 고학력자는 구직난에 처해 있습니다. 국가적인 낭비 아닙니까. "

- 방안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도 전문대 학생의 절반은 4년제 대학 탈락자입니다. 사실 저는 전문대학 이름에서 전문이라는 표현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조치도 반대합니다. 국민의 학력중시 풍토에 굴복하고 더욱 부채질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떳떳하게 전문대 학생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포화상태에 이른 일반대학의 팽창을 억제하고 전문대학을 적극 지원.육성해야 합니다. 또 학생들이 전문대 선택을 망설이지 않도록 사회적 대우도 개선해야겠지요. "

-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전문대의 자체노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각 대학은 교육의 내실화와 특성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문대는 실용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일부 학과들은 일반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취업률만 보더라도 일반대학보다 훨씬 높지 않습니까. 또 전문 직업교육이라는 설립취지에 맞춰 우리는 학생 선발에 있어서도 학력중심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올해 일반전형 모집비율이 52.7%로 지난해에 비해 10%가량 감소한 반면 특별전형은 10%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수능 2백50점짜리 일반학생보다 수능 1백90점짜리 실업계 고교 학생을 우선 선발합니다. "

- 회장에 취임하신 후 전문대 육성을 위해 정부에도 큰 목소리를 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요구를 하셨습니까.

"전문대를 키워야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는 점을 대통령과 국무총리께 말씀드렸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직업교육의 특성상 중요한 실험.실습 개선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산학협동체제를 위한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4년제대와 전문대를 학생수에서 비교하면 전문대가 3분의1 수준이지만 국고지원을 보면 전문대가 98년 기준으로 1천6백30억원에 불과해 4년제대의 10분의1 수준입니다. "

- 반응이 어땠습니까.

"공무원 시절 제 별명이 '악질' 이었습니다. 내무부 재정과 주사 시절 지방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국회의원 1백75명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 1백32명의 동의로 지방교부세법을 개정한 일이 있는데 이 일 때문에 당시 경제부처 직원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이같은 로비력 때문에 저를 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뽑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교육부 등에 재정지원을 요구한 결과 교육부 예산은 5.6% 줄었는데도 전문대 지원액은 지난해보다 17% 가까이 늘었습니다. "

- 경제난 여파로 부도 대학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만 전문대 사정은 어떻습니까.

"전문대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탄탄한 지방 중소기업들이 설립한 전문대들이 많아 비교적 건실한 편입니다. "

- 전문대 발전을 위해 주안점으로 삼는 정책은 무엇입니까.

"교육의 내실화입니다.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직업교육을 위해 주문식 교육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학협동 방안을 꾸준히 개발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또 전문대 수업연한이 2년 내지 3년으로 돼 있으나 현재 3년제는 보건 등 9개 학과만으로 교육부가 제한하고 있습니다. 학과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3년 이내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입니다. "

정리 = 강홍준 기자

◇정종택 회장은…

 59년 내무부 토목국 촉탁직 (임시직)에서 출발, 내무부 고위직을 거쳐 5, 6공에서 장관.국회의원 등을 두루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 고시 출신이 아닌데도 공직생활 21년만에 장관사령장을 받은 초고속 승진기록을 자랑한다.

공직시절 숫자에 관한한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데다 부지런하고 사교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환경부장관에서 물러나면서 출입기자들에게 "배운 도둑질이 행정이라 고향 가서 면장이라도 하고 싶다" 고 한 말이 신문 가십난에 나면서 충청대 설립자로부터 학장 제의를 받았다.

'사즉필생 생즉필사 (死卽必生 生卽必死)' 란 좌우명 그대로 정부.기업으로부터 전문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35년 충북 청원 출생 ▶53년 청주고 졸업 ▶58년 서울대 행정과 졸업 ▶74년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76년 충북도지사 ▶80년 농수산부장관 ▶81~92년 11, 12, 13대 국회의원 (민정당) ▶95, 96년 환경부장관 ▶97년 충청대 학장 ▶98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