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 내리고 편히 쉬셨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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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묘역에 도착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신이 삼군 의장대원들에 의해 엄숙하게 안치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23일 전국 곳곳에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전국 각지 분향소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과 시내 주요 역·터미널·공항의 TV 앞에선 수많은 시민이 고인과 작별인사를 했다. 시민들은 조사가 낭독되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으며 종교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손을 모으고 안식을 기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선 조문객과 주민 등 300여 명이 면사무소 앞 광장에 마련된 대형TV 모니터로 영결식 실황을 지켜보며 고인을 기렸다. 12년 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던 주민들의 표정에는 회한이 겹쳤다. 주민 윤복례(77·여)씨는 “하의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던 큰 어른을 영영 떠나 보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저세상에서도 고향의 어려운 사람들을 잘 보살펴 주시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박종원(50) 하의면장은 “지난 4월 김 전 대통령 내외가 하의도를 방문했을 때 처음 뵈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곁에서 모셨던 분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가슴이 허전하다”고 말했다.

하의도 생가엔 오전부터 수백 명의 조문객이 찾아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명복을 빌었다. 가족과 함께 생가를 찾은 문윤심(61·여·광주시 북구 동림동)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을 그분의 생가에서 배웅하고 싶어 찾아왔다”며 “저세상에서나마 무거운 짐을 모두 내리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의 옛 전남도청 분향소 옆에도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300여 명의 시민이 영결식 장면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의 역정을 잘 아는 중·장년층 시민들은 조사가 낭독되자 눈물을 훔치며 그의 안식을 기도했다.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글귀와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이 인쇄된 옛 도청 외벽의 대형 걸개그림을 보고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 광주·전남 추모위원회는 삼우제 기간인 25일까지 분향소에서 계속 조문객을 받기로 했다.

목포역 광장에 1000여 명을 비롯해 모교인 목포 전남제일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등 고인의 흔적이 있는 곳에 설치된 분향소마다 시민들은 무더위와 길게 늘어선 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정 앞에 헌화·분향했다.

경남도청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등 20곳에 마련된 경남 지역 분향소에도 조문객들이 이어졌다. 제주에선 도지사 주민소환투표를 앞두고 이날 하루 모든 유세를 중단했고, 더 클래식 골프장에서는 출전 선수들이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검은 리본을 달았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184개 공식 분향소에서 23일 밤까지 70여만 명이 조문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서울 15만여 명, 광주 13만여 명, 전남 20만여 명이었다. 전북은 7만 명, 경기도 6만 명, 부산 2만여 명, 대구 1만여 명이었다.

천창환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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