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챔피언십과 올림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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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16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골프 개인전. 한국 대표로 출전한 양용은은 미국 대표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에서 경기를 펼친다. 44세의 양용은은 PGA투어에서 14승을 거둔 베테랑 골퍼. 2009년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PGA투어의 정상급 골퍼로 자리 잡았다. 2011년엔 마스터스에서도 우승하면서 메이저 2관왕에 올랐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73>

그와 맞대결을 펼친 타이거 우즈는 PGA투어 데뷔 20년째를 맞아 여전히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41세의 우즈는 전성기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전 세계 언론은 110여 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복귀한 골프 종목에서 누가 개인전 금메달을 따낼 것인지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 우즈는 설욕을 벼른다. 2012년 PGA투어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을 갈아치웠지만 2009년 PGA챔피언십 마지막 날 양용은에게 역전을 허용해 우승을 내줬던 뼈아픈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천하의 골프 황제지만 한 샷 한 샷 무척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이상은 필자가 상상해본 2016년 올림픽 골프 개인전 경기 상황이다(2016년 올림픽 개최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건 17일 새벽 일어난 ‘대사건’ 때문이다. TV를 통해 양용은(37)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양용은은 세 살 아래의 타이거 우즈를 가볍게 제압해 버렸다.

한국의 남자 골퍼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지만,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우즈를 물리쳤다는 점도 놀랍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우즈를 상대로 역전승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드라마가 있을까. 만약 영화였다면 현실성이 없다고,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한 지 1년도 안 된 풋내기가 메이저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골프 황제와 맞대결을 펼친 끝에 2타 차의 열세를 뒤집고 역전승을 거둔다는 시나리오는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골프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랬다. “여자는 몰라도 남자 골퍼가 PGA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만큼 PGA투어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용은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일을 거뜬히 해냈다.

어찌됐건 그날, 양용은은 최고였다. 좀 심하게 말하면 우즈를 자유자재로 농락하면서 갖고 놀았다. “2번 홀까지는 무척 긴장했다. 그런데 직접 상대해 보니 타이거도 다른 선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샷거리가 나보다 서너 클럽은 더 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도 신은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그 이후엔 내가 타이거를 끌고 다녔다.”

양용은이 우승 직후에 한 말이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길로만 매진하는 그의 ‘돌쇠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이었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복귀하는 2016년에 양용은과 우즈가 대표선수로 출전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양용은과 우즈가 올림픽에서 대결을 펼친다는 가정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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