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량 531만 명분 … 타미플루, 풀 때인가 쌓아둘 때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정부가 신종 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 투약을 확대한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유행 이후 동시다발적인 중환자 발생에 대비해 비축분을 가급적 아껴야 하는데 오히려 유행 확산을 막겠다며 비축분을 푸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 11% 수준인 531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공급받기로 계약한 상태이며 실제 손에 쥐고 있는 물량은 270만 명분이 전부다. 나머지는 10월 중 국내에 들어온다.

정부는 지난달 말 신종 플루를 계절독감 수준의 관리체계로 전환하면서 타미플루 투약 대상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그러다 사망자 발생 이후 많이 푸는 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꿨다.

21일부터 해외여행 경력이나 확진환자를 접촉한 적이 없어도 임신부나 65세 이상 노인 등 고위험군이 발열·기침 등의 증세를 보이면 타미플루를 투약하기로 방침을 바꿨다(본지 8월 21일자 10면). 검사 대상을 줄이는 대신 의심증세만 있어도 타미플루를 투약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이렇게 타미플루를 풀다 보면 나중엔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본부 박기동 박사는 “그 총알(타미플루)이 떨어질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느냐가 공포스러운 점”이라며 “대부분의 사람은 타미플루를 안 먹어도 회복되는 만큼 가급적 많이 타미플루를 비축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의대 배현주(내과) 교수는 “타미플루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약간만 돌연변이(point mutation)를 해도 내성이 생긴다”며 “지금처럼 남발하면 변종이 생겼을 때 사용할 치료제가 없어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전국의 치료거점병원과 거점약국 등 1200여 곳에서 무료로 타미플루를 투약하기 시작하면서 일부에서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타미플루가 있는 약국을 찾아낸 후 인근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또 타미플루 투약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일선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 것으로 보여 타미플루 처방이 남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