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종 플루 ‘대유행’ 대비책 국민 신뢰 얻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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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종 플루의 국내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다. 어제 하루 신종 플루 감염자가 258명이나 발생했다. 지난 19일 처음으로 하루 감염 환자가 100명 선을 넘은 지 이틀 만에 두 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철로 접어들면 바이러스 활동이 강해져 감염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질 공산이 크다. 신종 플루 대유행(팬데믹)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우려스럽다. 보건당국과 국민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국내에서 신종 플루가 대유행 단계에 들어가면 2~4개월 만에 입원 환자가 13만~23만 명, 외래환자가 450만~800만 명까지 확산될 것이란 게 보건당국의 예측이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보건당국의 대비는 매우 미흡하다. 무엇보다 신종 플루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와 예방 백신이 턱없이 부족하다. 항바이러스제는 현재 전체 인구의 11%인 531만 명분 정도가 비축돼 있을 뿐이다. 영국·프랑스(50%)와 미국·일본(20~25%) 등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신종 플루 감염자가 급격하게 늘면 언제 바닥날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이다. 예방 백신도 11월부터나 접종이 가능하다. 그나마 녹십자 한 곳에서만 생산할 수 있어 물량이 500만 명분에 불과하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을 겪으면서 항바이러스제 비축 경쟁에 나선 선진국과 달리 이를 소홀히 한 우리 정부의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신종 플루 유행 대비 대응 방안은 예산 1700억원을 투입해 항바이러스 비축 물량 250만 명분을 추가 확보하고, 백신 비축 물량도 인구 대비 27%(1336만 명분)까지 늘린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안심하기는 어렵다. 신종 플루 대유행이 현실화되면 치료제 부족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대로 외국 제약사의 항바이러스제 특허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극단적 대책도 정부가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외국 제약사로부터 부족한 물량의 백신을 수입하기 위한 노력도 백방으로 기울여야 한다.

국민은 국민대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동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손 씻기 등 개인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등 이상 증세가 있을 경우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의심 증세가 전혀 없는데도 항바이러스제를 무분별하게 구입하려는 ‘사재기’도 자제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항바이러스제를 오·남용으로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부와 국민이 지혜를 모아 신종 플루를 잘 극복해 낼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게 분명하다. 차제에 국민의 생명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를 충분히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게 이번 신종 플루 사태의 교훈이며,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