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유로시대]유로貨 통용 어디서나 쓸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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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파리 근교 라 데팡스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인 '캬트르 탕'. 단일 쇼핑몰로는 유럽최대인 이곳에는 초대형 슈퍼마킷에서 의류 할인매장, 악세사리 전문점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탓에 인근 주민들만 아니라 각국에서 온 쇼핑객들로 언제나 붐빈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대형 전자제품 체인점인 '다티'는 유로시대 개막에 대비해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 점포다.

이미 6개월 전부터 모든 제품에 이중가격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프랑화로 1천9백90프랑인 전기조리기의 가격표에는 3백6. 15라는 유로 가격이 나란히 붙어 있다. 영수증도 이미 프랑과 유로 두가지로 찍혀 나온다.

"유로 거래에 대비한 준비는 다 끝났다"는 것이 점포 책임자인 디디에(46) 의 얘기다.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손님이 유로로 값을 치르더라도 받을 준비가 완벽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유로 출범을 앞두고 유로랜드 11개국은 일반 상거래에 적용되는 두가지 원칙을 도입했다. 첫째가 '반(反) 강제. 반(反) 금지' 원칙. 유로가 현금통화로 유통되기 시작하는 2002년 1월 1일 이전까지 3년간은 유로 사용을 강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막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거래 당사자가 서로 원하면 유로로 계산할 수 있다. 신용카드나 유로표시 수표를 사용해 유로로 대금을 결제하면 은행이 알아서 해당 통화로 환산, 구좌에서 정리해 준다. 유로 구좌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두번째는 '반올림' 원칙. 파리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온 3백60프랑을 신용카드를 통해 유로로 결제한다고 치자. 고정환율로 환산한 결과가 54.5363유로라면 소수 셋째자리에서 반올림한 54.54유로를 내야 한다. 상거래상 불편을 막기 위한 조치다.

프랑스 전국에 2백50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 프랑스 최대 슈퍼마킷 체인인 카르푸는 이로 인해 고민이 많다. 가격정책 때문이다.

예컨대 19.9프랑인 캔맥주 한 팩 (6개들이)의 가격을 유로로 환산하면 3.06유로지만 이를 실제로 얼마로 표시할 것이냐는 고민이다. 마지막 숫자를 9로 하는 '심리가격'을 적용한다면 2.99유로가 가장 좋겠지만 이는 할인을 뜻한다. 이게 쌓이면 손해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 유로로 결제하겠다는 소비자들이 많은 건 아니다. "프랑으로 결제할 수 있는데 굳이 유로로 할 필요가 있냐" 고 파리에 사는 가정주부 이자벨 (35)은 말한다. 왠지 번거로운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당장 유로를 받을 준비가 돼 있는 기업은 유로랜드 전체로 55% 정도로 조사되고 있다. 앞으로 3년간의 과도기는 소비자나 기업 모두 유로에 적응하는 훈련기간인 셈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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