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산책] DJ의 ‘파리’ 외교

중앙일보

입력

DJ가 한국 대통령 신분으로
중국을 방문한 건 1998년 11월이었습니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던 소생은
모처럼의 대형 사건을 만나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한참 취재를 다니다 한 이야기를 듣고선
'DJ는 참 대단하다'며 무릎을 친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일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98년은 우리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무지 고생하던 때이지요.

당시 DJ의 중국 방문에서 중요한 건
그 때도 지금처럼 잘 나가던 중국의 도움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장쩌민 국가주석과의 정상 회담 이후 DJ는
'중국경제의 짜르'로 불리며 중국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주룽지 당시 중국 총리와의 회담을 어떻게 이끌까 고민했습니다.
주룽지 총리의 마음을 사야 하는 건 당연했으니까요.

마침내 회담이 시작돼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1957년 우파 투쟁 때 말 잘못했다가 고초를 겪은 경험이 있던
주룽지 총리는 DJ의 민주화 투쟁,
그리고 그로 인해 DJ가 고초를 겪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주 총리가 말했습니다.
"김 대통령께선 감옥에 오래 계셨는데,
어떻게 그 긴 수감 생활을 견디셨습니까."

이때부터 DJ의 아이디어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책도 보고 하지만 감옥 생활은 정말 심심합니다.
헌데 가끔 파리가 날아들어오지요.
그럴 경우 파리 잡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지요.
그런데 이 파리 잡기 놀이에서 중요한 건
날아다니는 파리를 손으로 잡을 때
딱 기절할 만큼의 힘 조절을 해 파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리가 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잠깐 기절했던 파리가 깨어나 날아다니면
다시 파리 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요."

이 말에 주룽지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아니, 어떻게 날아다니는 파리를 맨손으로 딱 잡습니까.
어디 그 모습을 정말로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DJ가 답합니다.
"물론이지요. 만일 주 총리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면
제가 직접 보여드리지요."

이 말에 주 총리는 웃음과 함께 탄복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경제의 총수인 주룽지 총리를 한국으로 초청하겠다'
'그러니 주 총리 당신은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DJ의 기지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지요.

그로부터 2년 후인 2000년 주룽지 총리가 한국을 방문합니다.
한국 방문의 성과로
삼성화재가 중국에서 영업할 수 있는 허가를 받고
또 현대자동차는 중국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한국 경제로선 중국진출에 또하나의 큰 이정표를 세운 것이지요.

헌데 저는 지금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주룽지 총리가 2000년 가을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을 때
DJ가 정말로 '파리 잡기' 모습을 보여줬는가 하는 점이지요...

2009년 8월 18일 타계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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