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이라크 공습]바그다드 공습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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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이 트자 바그다드 시내가 발칵 뒤집혔다.

한밤중의 요란한 폭음과 불빛에 놀라 잠을 설친 시민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군거리며 미국의 공습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91년 걸프전 당시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바그다드 현지 표정을 미국의 CNN방송 등 외신과 현지인 통화 등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편집자 17일 0시50분을 채 넘지 않은 시각. 갑자기 굉음이 고요한 바그다드 상공을 가로질렀다.

이어 천둥과 번개를 방불케 하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공중 쇼가 1분여 계속됐다.

동시에 이라크군의 대공포.예광탄 발사소리가 콩을 볶는 듯했다.

공습경보 사이렌이 폭음과 함께 어우러진 시각도 이때. CNN방송이 전하는 미국의 1차 이라크 공습 순간이다.

유유히 바그다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티그리스강 건너편, 카라다 지역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거대한 황갈색 궁전이 있다.

궁안에는 고위직 관료들의 거처 수백채도 있어 궁 둘레만 10리에 가깝다.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굉음이 나면서 불길이 솟기 시작한 것은 1차 폭격이 끝나갈 무렵. 궁전 모퉁이에 세워진 이슬람탑 모양의 구조물중 하나가 미사일을 맞았다.

불길은 삽시간에 궁전 본채로 옮겨붙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포탄소리에 잠이 깬 시민들이 영문을 몰라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사일 한발이 바그다드 번화가인 구시가지 부근에 떨어지면서 거리가 뒤집어졌다.

파열된 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로 순식간에 거리는 물바다로 변했고 시민들은 집으로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1차 공습 후 이라크 라디오방송은 후세인 찬가와 군가를 내보내며 국민에게 당황하지 말고 미국에 대항하자고 독려했다.

오전 2시30분 또다시 천지를 뒤흔드는 폭격음이 되살아나며 2차 공습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바그다드 외곽지역에 밀집한 방공포 군기지 등 군사시설로 미사일이 집중 날아들었다.

그중 한발은 바그다드 중심가에 떨어졌다.

이때 충격은 부근에 위치한 프레스센터와 CNN 등 서방기자들이 묵고 있는 라쉬드호텔 및 서방 방송기재가 밀집해 있는 문화공보부 건물을 흔들어댔다.

날이 밝자 이라크 문공부는 CNN 특파원을 부근의 알 야르마르 병원으로 안내, 민간인 시신 5구와 30여명이 신음하며 치료받는 현장을 보도록 했다.

이날 공습은 오전 4시까지 두 차례 더 이어졌다.

오전 6시쯤 더 이상의 공습이 없자 후세인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상황은 91년의 걸프전과 똑같다.

사악한 미국의 공격에 당황하지 말고 결사항전해야 한다" 며 대 (對) 국민방송을 내보냈다. 바그다드의 시민들은 밤새 이어진 공습으로 두려움 속에 잠을 설쳤지만 17일 오전 동이 트면서 평온을 되찾고 일상적인 생활에 복귀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미국의 공습이 끝나고 시내가 평온을 되찾자 미사일공격의

목표가 됐던 지역을 시찰해 피해상황과 병사들의 상태를 점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고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또한 바그다드 시내에 있던 후세인 대통령의 막내딸 할라가 사는 집도 미사일에 맞았으나 무사하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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