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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꿈 있어 절망 이겨냈죠” … 중증마비 두 ‘수퍼맨’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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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병원서 재활의학과 의사로 활동하는 이승복 박사,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의 이상묵 교수. 전신마비의 사고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이들이 18일 서울대에서 만나 두 시간 가까이 그들의 ‘꿈’에 대해 얘기했다. 이날 만남은 이승복 박사가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묵 교수가 요청해 이뤄졌다.

# 우리를 수렁에서 건진 건 ‘꿈’

두 사람 모두 별명이 ‘수퍼맨’이다. 1995년 낙마사고로 척추를 다쳤던 ‘수퍼맨’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와 닮았다는 것이다. 99년 척추 질환자를 위한 재단을 세웠던 리브는 장애인의 영웅이었다. 이 교수와 이 박사도 장애 극복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자연히 이런 별명이 붙었다. 전신이 마비되는 좌절을 이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이상묵=사고를 당하고서야 내가 낙천적인 성격이란 걸 알았어요. 사고 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발레리나나 피아니스트였다면 직업을 잃었을텐데, 대학 교수라 얼마나 다행인가’하고요. 다시 강단에 서고,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붙잡아주었죠. 체조 선수를 꿈꿨던 이승복 박사는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승복=그랬지요. 그땐 체조로 꼭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체조로 성공하겠다는 집념도 결국은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다는 목표, 장남으로서 성공해야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있어 다시 의사라는 직업에 도전할 수 있었어요.

# 갈 길 먼 한국 장애인 복지

이승복 박사는 미국 볼티모어에 살고, 이상묵 교수는 미국서 사고를 당해 3개월간 재활 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말 학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는 이 교수는 “왜 미국에서 살지 않고 한국으로 왔을까 후회가 될 정도였다”고 말을 꺼냈다.

이상묵=미국은 어찌나 장애인 시설이 잘돼 있는지, 충격을 받았어요. 모든 음식점을 자유롭게 갈 수 있고, 보도블록부터 대중교통까지… 혼자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아무 불편이 없죠.

이승복=한국은 택시 말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죠. 미국은 리프트 버스가 일반적이에요. 또 삼성동 같은 강남 일부 지역 외엔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식당을 찾기 어려워요. 어쩔 땐 도로를 다 뜯어내고 다시 깔 수 없을까, 싶을 정도예요.

한국과 미국은 장애인을 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다고 했다.

이승복=미국만 해도 저 같은 사람에게 대단하다, 훌륭하다 하지 않아요. 장애인이 일하는 걸 당연하게 보니까요. 그런 면에서 한국에도 이상묵 교수님 같이 활발히 활동해 주시는 분이 계신 것이 감사하죠.

이상묵=한국은 장애인들이 외출 자체를 잘 못하잖아요. 미국선 길거리에 장애인이 너무 많으니 특별하게 보질 않아요. 저만 해도 직업이 있으니 그나마 떳떳하지요. 한국에선 어려서 장애를 입으면 번듯한 직업을 갖기도 힘듭니다.

# 장애인 역할 모델 만들고파

이상묵 교수는 최근 지식경제부에서 4년간 390억원을 지원하는 연구개발 사업을 맡았다. 음성인식·보조로봇 같이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장애 학생에게 과학 교육을 시키는 것이 주요 사업 내용이다.

이상묵=장애인에게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역할 모델도 제시해 주고 싶어요. 장애인은 대부분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를 전공하려 하죠. 정보기술(IT) 관련 기술을 배우면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이승복=그런 것이 꼭 필요합니다. 양용은 선수나 가수 비를 보세요. 이미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어요. 장애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글로벌 리더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꿈을 많이 꿉니다.

이상묵=박사님은 경험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으실텐데, 우리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부탁하고 싶습니다. 한 블로거가 박사님을 두고 국가대표 해외파 장애인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국내 리그에 들어와서 뛰시는 겁니다. 허허.

이승복=좋습니다. 계속 논의해 봅시다. 늘 그런 생각을 해 왔어요.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의 미래 의사를 훈련시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글=임미진, 사진=오종택 기자

“미국처럼 장애인 불편 없게 할 수 없을까 늘 생각”
이상묵 교수 (1962년 서울생)

▶서울대 해양지질학 학사(1985) ▶미국 MIT 해양학 박사(1995) ▶서울대 자연과학대 지구환경과학부 조교수(2003~)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지질조사 중 차량 전복 사고로 전신 마비(2006.7) ▶서울대 강단 복귀(2007)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특별상 수상(2008)

“기회 된다면 한국에 돌아와서 장애인 돕고 싶어”
이승복 박사 (1965년 서울생)

▶온 가족 미국 이민(1973) ▶고3때 체조 훈련 중 사고 당해 사지 마비(1983) ▶뉴욕대 학사(1988년) ▶다트머스대 의대 수석 졸업(2001) ▶하버드대 의대 최고 인턴 선정(2004) ▶존스홉킨스 의과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의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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