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특별기고 ② 사려 깊고 치밀한 리더십의 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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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민, 학자, 정부 공직자, 대학생들의 역대 대통령 평가를 보면 부동의 1위는 단연 박정희 대통령이다. 100점 만점에 90점의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이어 60점대에 있는 이승만·전두환·김대중 대통령이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50점대 그룹인 노태우·김영삼·노무현 대통령이 3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일반 서민은 비록 정치는 독재를 했지만 단군 이래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꼽으며 A학점을 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 경제를 살리고, 북한과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을 들어 2위권에 드는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좀 더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해답은 재임 시 그가 보여준 국정 수행의 리더십과 퇴임 후 행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매우 사려 깊고 예리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 번 검토한 정책도 결재할 때면 꼼꼼히 다시 읽고 수정하는 매우 치밀한 면모를 보였다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인사가 필자에게 밝힌 바 있다. 김 대통령의 이런 기질과 성품은 국정 수행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논리에 입각한 예리한 판단이 때론 소심함으로 이어져 결정적 전략과 정책 수행에서 추진력과 속도감 저하로 나타나기도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개최 조건으로 북한이 수억 달러의 현금을 요구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내심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그런 김 대통령의 마음을 읽은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이 직접 싱가포르에서 북한 대표를 만나 돈을 송금키로 함으로써 모든 법적·정치적 책임을 자신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박 실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한 면담에서 필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북한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한 만큼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를 예리하게 추궁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이후 남북관계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 각계각층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국내 정치적 갈등이 한결 완화되었을 것이다.

다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은 인사관리에서 자기 지역 출신을 상대적으로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취임 초 국정원장 자문회의에서 필자는 원장을 제외한 실·국장급 간부 전원이 대통령 출신 지역 인사들로 구성돼 타지역 출신 국정원 인사들의 냉소가 큰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퇴임 후에도 영·호남을 통합하고, 현직 대통령에게도 조언하는 등 포용적 탈(脫)정치 지도자로 변신했더라면 박정희로 대표되는 산업화와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에 이어 ‘민주화된 산업화’가 21세기 국정이념이 되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정치개혁회의에서 대통령은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금부터 모든 부패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할 것을 건의했다. 1년 후 김대중 대통령은 일산 자택을 매각하고, 동교동에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건립해 연세대에 기증했다.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의 유산은 대통령 기념도서관과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를 확충하는 한편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장학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의 새로운 부활은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서거 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저승에서도 이승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대통령이다.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대통령학